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영국 에너지기업 BP가 독일 린겐(Lingen) 정유소에 연간 1만1000톤 규모의 녹색수소(green hydrogen)를 생산할 수 있는 100MW급 전해조 설비를 구축한다.
이 프로젝트는 2027년 하반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며, 생산된 수소는 일부 BP 자체 정제 공정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산업 고객에게 공급될 예정이다.
공급계약은 EU가 정의한 ‘비생물학적 유래 재생연료(RFNBO, Renewable Fuels of Non-Biological Origin)’ 규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특히 철강, 화학 등 탈탄소화가 어려운 분야의 기업들이 주요 오프테이커(offtaker)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프로젝트는 EU의 ‘공통 유럽 이익의 중요 프로젝트(IPCEI, Important Projects of Common European Interest)’ 중 ‘Hy2Infra 프로그램’에 선정돼 총 43억 유로 규모의 EU 자금 지원 대상 23개 사업 중 하나로 포함됐다.
■ 독일 수소핵심망 9040km와 연계한 유럽형 수소허브 구축
린겐 프로젝트는 기술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커민스(Cummins)의 청정기술 자회사 액셀레라(Accelera)가 공급하는 5MW급 HyLYZER-1000 PEM(Proton Exchange Membrane) 전해조 20기가 핵심 설비로 도입된다. 이는 재생에너지 기반의 변동성 전력에도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기술로, 수소 생산의 가동률 향상과 시스템 반응성 측면에서 강점을 보인다.
더불어 린겐은 독일 정부가 구상 중인 9040km 길이의 ‘수소 코어 네트워크(Hydrogen Core Network)’와 직접 연결될 예정으로, 유럽 내 국경을 넘는 수소 운송망의 거점 인프라 역할까지 수행할 전망이다. 이는 유럽 내 수소허브 구축의 핵심 축이자, 투자 유치에 있어 확실한 수요 기반이 될 수 있다.
■ 영국선 철수, 유럽선 전진… BP의 전략 변화는 투자자 압력 때문?
BP는 이번 린겐 최종투자결정(FID, Final Investment Decision)을 2023년 12월에 내린 반면, 불과 몇 주 뒤인 2024년 3월 영국 하이그린 테사이드(HyGreen Teesside) 프로젝트는 전격 취소했다. 한때 영국 수소전략의 핵심축이던 프로젝트는 백지화됐으며, 1.2GW급 블루수소 계획인 H2Teesside 역시 축소 또는 전면 중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결정은 BP가 저탄소 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본격화한 결과다. BP는 최근 발표를 통해 기존 50억 달러 이상 규모였던 재생에너지 투자계획을 줄이는 대신, 오일·가스 분야 투자 규모는 연간 30% 증액한 100억 달러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이는 고금리 환경 속 장기 투자형 청정기술 프로젝트의 수익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 그리고 투자자들의 빠른 수익 회수 요구에 따라 ‘수익 중심의 저탄소 전략’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평가다.
EU가 수소 관련 인프라·규제·계약모델을 빠르게 정비하는 반면, 영국은 아직 ‘수소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지연되고 있어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한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