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기업 규제 프레임워크인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이하 CSDDD)이 2025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되며,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중대한 파급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이 법안은 유럽 내외 대기업에 △인권 보호 △환경 리스크 관리 △기후변화 대응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며, 공급망 전반에 걸친 기업의 책임을 명문화한 최초의 국제적 법제도로 평가된다.
CSDDD는 EU 역내 직원 1000명 이상 또는 전 세계 매출이 4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EU 기업은 물론, EU 내 매출이 이 기준을 넘는 비EU 기업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한다. 즉, 한국·미국·일본 등 글로벌 대기업도 유럽 시장을 겨냥한 사업을 영위하는 이상 예외가 없다.
■ ‘책임 있는 자본주의’ 강제하는 구조
CSDDD는 다음과 같은 핵심 규정을 담고 있다.
△인권·환경 리스크 식별 및 완화 의무: 아동 노동, 강제노동, 토지 착취, 생물다양성 파괴 등 실질적 또는 잠재적 부정적 영향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방지·시정하는 정책 구축
△이해관계자 참여 및 신고절차 보장: 공급망 내 노동자, 지역 주민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피해를 신고할 수 있는 체계 마련
△기후변화 대응계획 수립: 파리협정 및 EU 기후법에 부합하는 전환계획 수립 및 실행
△공개보고 및 모니터링 의무: 실사 정책의 이행 효과를 측정하고 연례 보고서로 공개
△위반 시 강력한 제재 부과: 최대 연매출 5%의 벌금과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부여
이 지침은 각 회원국의 감독기관이 집행하며, EU 차원의 감독 네트워크(EU Supervisory Authorities Network)도 구성된다.
■ 공급망 윤리 vs 에너지·무역 현실
CSDDD의 도입은 명분상 ‘책임 있는 자본주의’의 실현이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복잡한 이해충돌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중동 에너지 수출국의 반발이다. 카타르는 CSDDD가 자국의 노동환경과 공급망 구조를 “일방적 가치관”으로 재단한다며, 유럽 대상 LNG 공급 차질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카타르는 유럽 LNG 수입의 12~14%를 차지하며, 러시아 가스 의존 탈피 이후 유럽 에너지안보의 핵심 공급처로 자리 잡아왔다.
이와 유사하게, 아프리카 광물 자원국들 또한 채굴 현장의 인권·환경 리스크로 인해 유럽 기업과의 거래가 중단되거나 고비용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EU 회원국 내에서도 논란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산업계는 법안 시행으로 인한 행정비용 증가와 공급망 위축을 경고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들은 CSDDD 조항의 단순화 또는 시행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 글로벌 ESG 통상 마찰 본격화
CSDDD는 단순한 환경·사회 규제를 넘어, 무역정책과 공급망 거버넌스의 전환을 상징한다. 특히 글로벌 가치사슬 상 하위에 있는 국가들은 실질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EU를 중심으로 한 ‘ESG 블록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 일본, 미국 등도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CSDDD에 대응할 필요가 커졌으며, EU와의 통상·정치적 협상에서 새로운 의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기업들 입장에서는 공급망 전반에 ESG 요건을 사전 점검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직접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대기업의 납품 파트너일 경우 사실상 동일한 실사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CSDDD는 유럽연합이 세계 무대에서 ESG 규범의 선도자 역할을 자임하며 만든 강력한 법제도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와 ‘에너지 안보’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그리고 EU 외 국가들과의 마찰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가 향후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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