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선 이미지  / 사진출처 : LME
구리선 이미지 / 사진출처 : LME

[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구리에도 고율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3대 핵심 금속이 모두 '관세 전쟁'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전기차, 전력망, 군사 분야의 필수재로 쓰이는 구리를 콕 집어 관세 부과를 언급한 만큼 글로벌 산업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구리 수입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조사를 실시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구리는 차량·선박·항공기를 포함한 군사 장비의 필수 구성 요소이자 AI 등 최신 기술의 획기적 발전을 뒷받침하는 하드웨어"라면서 "중국과 다른 나라의 불공정무역 관행으로 훼손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구리에 대한 조사는 '트럼프 시간(Trump time)'대로 진행할 것이며 이는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은 쿼터(각국의 수출물량 제한)보다 관세를 선호한다"며 관세 부과를 기정사실화했다.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핵심 광물에 대한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는 7월 9일까지 더 높은 관세율을 통보하고 8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새로운 구리 수입 관세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국내 기업 직격탄 불가피

우리나라도 지난해 미국에 구리 제품 약 5억 7000만 달러(약 8167억 원, 한국무역협회 기준) 규모를 수출한 만큼 제한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선 제조 중소기업들은 이미 높은 구리 가격으로 수익률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부담을 떠안게 될 처지다.

금일 본 기자가 만난 전선 제조 중소기업 관계자는 "높은 구리 가격으로 수익률만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력산업에 구리가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국내 관련 업체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구리 가격 급등, 시장 혼란 가중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시사에 따라 구리 시장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선물 가격은 3개월여 만에 톤당 1만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3개월 만기 구리 선물 가격은 한때 톤당 1만 20.50달러까지 오르며 지난 3월 26일 이후 장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관세 부과 우려에 트레이더들이 서둘러 구리를 비축하면서 가격이 뛰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COMEX 구리 선물 가격은 LME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재고량은 7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는 관세 부과에 따른 가격 상승을 피하거나, 향후 관세 적용 시 차익 실현을 노리기 위해 LME 창고에서 COMEX 창고로 재고를 이동시키는 현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7월 7일 비철금속 시장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구리는 지난주 톤당 1만 20.5달러까지 상승한 이후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되며 가격이 하락했다. 현재 LME 창고의 구리 재고는 2월 중순 대비 약 64% 감소한 상태다.

미국 경제에도 부메랑 효과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관세 예고에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2월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98.3으로 전월 대비 7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다우존스가 예상한 102.3을 크게 밑도는 수치이며 낙폭으로는 2021년 8월 이후 최대치다. 10년물 미 국채금리도 25일 4.285%로,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관세 부과는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정책 불확실성 자체가 기업들의 의사결정을 지연시켜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됐다.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곧 발표될 관세 협정이 현재 의회예산국(CBO) 추산치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 될 것이며, 재정적자를 상당 부분 줄일 것이라 언급했지만, 경제 전반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AI·전기차 시대, 구리 수요 급증

구리에 대한 관세 부과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AI와 전기차 시대의 도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4월 발표한 '에너지와 AI' 특별보고서에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량이 2024년 약 1.5%인 415TWh에서 2030년까지 945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력소비량이 늘어나는 만큼 전력이 공급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추가 전력망이 구축돼야 한다.

각국 정부도 전력망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사인 레데이아는 4월에 발생한 대규모 정전 이후 전력망 등에 올해 14억유로(16.5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전력망 운영사 PSE는 국유은행 BGK로부터 108억즐로티(29억9000만달러) 이상의 대출을 받아 추가 전력망을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이재명 정부는 지방의 전력을 수도권 등 대도시로 보내기 위해 전국에 U자형 에너지 고속도로(전력망)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전력산업에 구리는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구리 공급망의 안정성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장기 구리 가격 상승 전망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무역 리스크 완화, 연내 미 연준 금리인하 가능성, 전기차와 AI 산업의 성장 전망 등으로 인해 구리의 신규 수요가 발생해 구리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드맥킨지는 구리가격이 2025년 9373달러에서 2029년 9545달러로 1.8% 오를 것으로 봤고, S&P글로벌은 같은 기간에 9433달러에서 1만62달러로 6.7% 오를 것으로 봤다. 블룸버그는 9424달러에서 1만409달러로 10.5%, 모건스탠리는 9237달러에서 1009달러로 8.4%, 뱅크오브아메리카는 8866달러에서 1만788달러로 21.7%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올해 1분기 9340달러에서 2027년 4분기에 1만569달러로 13.2%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의 구리 가격 전망
한국광해광업공단의 구리 가격 전망

공급 측면에서도 제약 요인이 많다. 우드맥킨지는 올해 칠레의 광산 생산량이 주요 광산 노후화에 따른 품위저하 및 용수부족 문제로 전년보다 0.1% 감소한 555만3000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올해 정련동 소비증가율은 2.5%로, 공급증가율 1.3%를 상회해 수급 펀더멘털이 2024년 19만6000톤 공급과잉에서 올해는 10만6000톤 공급부족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미국에 최소 90만 달러(약 13억 원)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존 투자이민(EB-5) 제도를 없애고 500만 달러(약 71억 원)에 영주권을 주는 '골드 카드' 정책을 2주 뒤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해 또 다른 파장을 낳고 있다.

백악관이 무역 협상 결과 발표를 앞둔 가운데 주요 주가지수는 하락 출발했고, 달러는 강세를 보였다. 미 재무장관은 수요일까지 무역 합의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번 주가 관세 정책 측면에서 중요한 한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S&P 500 지수에 포함된 주요 기업들은 이번 주부터 2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며, 연준의 6월 회의 의사록도 공개된다. 투자자들은 예상보다 많은 일자리가 발표된 6월 고용 지표 이후 연준의 향후 금리 인하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 COMEX : 뉴욕상품거래소

■  LME : 런던금속거래소

■  S&P 500 : 스탠더드 앤 푸어 500은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00개의 가장 큰 기업들의 주가 성과를 추적하는 주가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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