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글로벌 LNG 가격 급등과 에너지 시장 불안이 이어지면서, 한국 가스 요금 결정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핵심은 도시가스 도매요금이 사실상 ‘검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전력 부문에는 전력거래소와 전기위원회라는 전문 검증 기구가 존재하지만, 가스 부문에는 이와 같은 중립적·독립적 장치가 전무하다.
전력 부문에는 전력거래소와 전기위원회라는 이원적 검증 체계가 존재해, 전력 도매요금과 전기요금 산정 과정 전반을 전문적이고 독립적으로 심의·검증한다. 전력거래소는 발전사와 판매사 간 전력 거래 가격을 산출·관리하고, 전기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요금 인상·인하의 타당성을 검토하며 세부 산정 근거까지 확인한다.
반면 가스 부문에는 이와 같은 중립적·독립적 검증 장치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가스 도매요금은 한국가스공사가 스스로 공급비를 산정한 뒤 이를 산업통상자원부가 단기간 검토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산정 근거, 도입 단가, 환율, 운송비, 재고 유지비 등 핵심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사실상 외부의 전문적 검증 없이 요금이 결정되는 셈이다. 이로 인해 시장 투명성이 저하되고, 가격 변동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와 가스는 가격·수급 구조에서 긴밀하게 맞물려 있지만 규제 체계는 분리되어 있다”며 “이는 시장 통합성·효율성을 저해하는 시대착오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가스 도매요금 산정은 공급자인 한국가스공사가 자체 산정한 공급비를 산업통상자원부가 단기간 검토하고,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최종 결정하는데, 세부 산정 근거와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체리피킹 논란, 불투명 구조가 불씨
2022~2023년 글로벌 LNG 공급 대란은 국내 가스 시장의 취약한 구조를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국제 LNG 현물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의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폭등세를 이어갔고, 국내 발전용 천연가스 가격과 도매원가 역시 급등했다. 이로 인해 한국전력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한국가스공사에는 미수금이 대규모로 누적됐다.
이 과정에서 민간 LNG 직수입 발전사를 둘러싼 ‘체리피킹(cherry picking)’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에서는 이들 발전사들이 국제 LNG 가격이 고점에 달했을 때 의도적으로 도입 물량을 줄이거나, 보유한 발전기의 가동률을 낮춰 LNG 구매 부담을 한국가스공사에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즉, 값비싼 시기에는 LNG를 적게 들여오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하락했을 때만 적극적으로 도입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의혹이다. 이러한 행위가 결과적으로 가스공사의 평균 구매단가를 높여 도매요금 인상 압력을 키웠고, 이는 곧 소비자와 산업계의 에너지 비용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민간 발전사들은 강하게 반박했다. 전력시장 운영규칙상 민간 직수입 발전사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최소한의 LNG 재고를 항상 유지해야 하며, 전력 수급 상황과 계통 운영 계획에 따라 발전량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격 상황만을 고려해 임의로 도입 물량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전력 수요 변동, 계통 운영 제약, 장기 도입 계약 조건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시기별 LNG 도입량이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체리피킹’ 논란은 명확한 사실 규명 없이 공방만 이어지며 사회적 불신을 키웠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발생한 근본 배경으로 가스 도매요금 산정과 도입 물량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 및 검증 체계 부재를 꼽고 있다. 시장 참여자 간 갈등이 불필요하게 증폭된 것도, 외부에서 이를 객관적으로 심의·판단할 독립적인 규제·감독 기구가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런 사안에 대해, 가스 요금 산정과 도입 물량, 저장 재고 수준 등에 관한 정보가 제때 투명하게 공개되고 객관적인 검증 절차를 거쳤다면 논란은 장기간 이어지지 않고 조기에 정리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교수는 “가격 결정의 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각 시장 참여자의 도입·운영 행태가 객관적으로 검증된다면 불필요한 의혹 제기나 감정적 공방은 상당 부분 사라질 수 있다”며, “이런 갈등이 장기화되면 정부와 시장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고, 결국 정책 집행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고 시장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력·가스 요금과 도입 물량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구가 상시적으로 심의·검증하는 체계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며, “특정 기관이나 부처 내부에서만 결정을 내리는 구조로는 앞으로 더 복잡해질 에너지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 해외 주요국, 전기·가스 통합 규제로 신뢰 확보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전기와 가스를 통합적으로 규제하는 제도를 통해 에너지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의 가스전력시장위원회(Ofgem, Office of Gas and Electricity Markets)는 전기와 가스 요금, 인프라 투자, 시장 경쟁 상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며, 요금 산정 과정에서 사용된 모든 자료와 근거를 일반에 공개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가 가격 형성 구조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의 에너지규제위원회(CRE, Commission de régulation de l'énergie,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역시 전력과 가스 부문을 동시에 감독하며, 매년 시장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간해 전력·가스 가격 변동, 인프라 투자 현황, 공급 안정성 등 주요 지표를 분석·공개한다. 이 보고서는 정부 정책 수립뿐만 아니라 소비자 단체와 기업의 의사결정에도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일본의 전력가스시장감독위원회는 도입, 도매, 소매 등 시장의 전 단계를 관리·감독하며, 가격 변동 요인을 도입단가, 운송비, 환율, 재고비용 등 세부 항목별로 구분해 분석한 뒤 이를 정부와 소비자에게 상세히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가격 변동의 원인과 책임 소재가 명확해지고,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상준 교수는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시장 참여자의 형태나 규모를 불문하고 동일한 심사 기준을 적용하며, 도입단가·운송비·환율·재고비용 등 핵심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점”이라며, “한국도 현재 전력 부문만을 감독하는 전기위원회를 ‘전기가스위원회’로 확대 개편한다면, 이러한 선진국형 통합 규제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현실적 대안과 제도 개편 방향
단기적으로는 현행 전기위원회 심의 구조에 가스 분야 전문가를 포함시켜 ‘혼합 심의제’를 운영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전기위원회는 전력 분야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가스 도매요금과 같이 전력과 밀접히 연계된 사안을 심의할 때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가스 도입·공급·요금 산정 구조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을 포함해, 전기와 가스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심의 체계를 갖추자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향후 기후에너지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맞춰 산하에 ‘전기가스위원회’를 신설해 정책 수립과 시장 감독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에너지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후에너지부 산하에 ‘전기가스위원회’를 설치하면, 정책 수립과 시장 감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효율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력·가스 시장의 구조적 연계성을 반영한 일관된 규제와 감독이 가능해지고, 불필요한 부처 간 업무 중복이나 사각지대가 줄어들 수 있다.
이상준 교수는 “전기와 가스를 분리 관리하는 체제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다. 에너지 시장은 투명성과 신뢰가 확보돼야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며, “이러한 기반이 갖춰져야 장기 투자와 공급망 관리가 가능해지고,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성도 확보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전기·가스 통합 규제와 핵심 정보의 전면 공개는 단순한 행정 효율화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래 에너지 전환 시대를 준비하는 핵심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부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농경제학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자원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산업전환분과 전문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전문위원회 위원, 환경부 할당결정심의위원회 위원, 그린수소 인증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기후변화정책연구팀장을 역임하며 국내 기후·에너지 정책 연구에 기여했다.
■ 용어 설명 :
· ‘체리피킹(cherry picking)’ = 여러 선택지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마음에 드는 것만을 고르고, 불리하거나 원치 않는 것은 배제하는 행위. 원래는 체리나 과일을 수확할 때 잘 익고 보기 좋은 것만 골라 담는 모습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영어권에서 비유적으로는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일부 유리한 정보나 사례만 취사선택하는 행위를 지칭. 에너지·경제 분야에서는 주로 시장 가격 변동이나 규제 구조를 이용해 수익이 극대화되는 조건에서만 참여하고, 손실이 예상되는 조건에서는 빠져나오는 행태를 비판할 때 쓰인다. 예를 들어, LNG 시장의 ‘체리피킹’은 가격이 낮을 때만 직수입하고, 가격이 오르면 공공 공급망에 부담을 전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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