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장재진 주필]
한국전력이 최근 국내 최초의 '장기 배전계획' 수립했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에너지 시스템 전환의 중요한 변곡점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히 전력 공급 방식을 넘어 다가오는 분산에너지 시대에 대한 우리의 준비 상태와 미래 에너지 지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정기 배전 계획의 핵심 내용과 의미
전통적인 중앙 집중식 발전 및 송배전 시스템에서 전력은 발전소에서 생산되어 대규모 송전망을 거쳐 배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일방향으로 공급되었다. 그러나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이 확대되고 지역 단위의 자가 소비 및 소규모 전력 생산이 늘어나면서, 전력 흐름은 점차 양방향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해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이러한 변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며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분산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강조한다.
이번 한전의 장기 배전계획은 이 법에 따라 수립되는 최초의 법정 계획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기존의 3년 이하 단기 중심의 계획으로는 급변하는 분산에너지 환경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한계를 극복하고, 2028년까지 약 4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산에너지 발전량을 안정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번 장기 배전계획의 핵심은 5년 단위로 지역별 전력 수요와 분산에너지 보급 전망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현재 분산에너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태양광이 특정 지역(주로 호남권)에 집중되어 있지만,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배전망 증설 및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행된다면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투자 불확실성 해소와 전력망 안정성 강화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들이 가장 크게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계통 연계 가능성 및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장기 배전계획을 통해 지역별 배전망 용량 정보와 증설 계획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사업자들은 보다 정확한 사업 타당성 분석과 투자 계획 수립이 가능해져 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 특히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대규모 증가는 전력망 운영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장기 계획에 기반한 체계적인 배전망 보강 및 운영 시스템 고도화는 증가하는 분산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수용하고 전력 품질을 유지하며 계통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신산업 육성 및 기술 혁신 촉진 및 지역 에너지 자립 기반 마련
분산에너지 시대에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기술과 솔루션이 요구된다. 스마트 그리드,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 등 배전망 운영 효율화 및 안정성 강화를 위한 신기술 도입 및 관련 산업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계획은 '지역 분산에너지 활성화'라는 법의 취지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 기반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남은 과제와 전망
한전의 장기 배전계획 수립은 분산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계획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정확하고 현실적인 분산에너지 보급 및 전력 수요 예측, 필요한 예산의 적기 확보, 효율적인 공사 및 운영 시스템 구축, 그리고 이해관계자들과의 긴밀한 소통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올해 하반기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면 지역별 배전망 투자 방향, 분산에너지 수용 능력 증대 방안, 그리고 신기술 도입 계획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계획이 우리나라 전력 시스템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재생에너지 산업과 투자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분산에너지 시대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다. 한전의 첫 장기 배전계획이 분산에너지 시대를 향한 단단한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