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AI 산업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연평균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수도권에 집중된 AI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분산하고 전력 공급원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송전망 과부하와 국가 전력계통 붕괴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7일 국회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AI 데이터센터 구축전략 세미나’에서는 급격히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수도권 집중 현상이 국가 전력 인프라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지방 분산과 탄소중립형 전원 전환 없이는 AI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건국대 박종배 전기공학과 교수는 기조 발제에서 “AI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현행 송전망 체계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AI 시대의 경쟁력은 전력 인프라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의 데이터센터는 현재 약 60%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으며,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29년에는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도권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고, 신규 센터 건립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발전설비 예비율은 높은 편이지만 수도권 지역은 송전 제약으로 인해 실질적인 전력 수용 여력이 부족하다”며 “수도권에 AI 데이터센터를 계속 몰아넣는 구조는 심각한 전력 불균형을 초래하며 지방 분산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2038년에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전체의 약 4%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이 같은 추세에 대비해 무탄소 전원 확대, ESS·양수발전 백업 설비 구축, 그리고 지방으로의 인프라 분산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방 전력 여건 풍부...통신망·인력 따라줘야 실효성 확보”
정부도 이 같은 우려에 공감하며 최근 ‘디지털 인프라 지방분산 전략’을 발표하고 지방 전력 인프라 구축과 부지 제공,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 AI 데이터센터의 국가전략기술 지정 등을 추진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SK그룹과 AWS가 울산에 구축 중인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지방에서도 첨단산업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모범적 사례”라며 데이터센터의 지방 이전 정책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전력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SK텔레콤 하민용 AIDC 부사장은 이날 토론에서 “울산에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지만, 운영 인력과 통신 인프라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하 부사장은 “데이터센터 입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력 확보”라며 “전기요금 할인, 세제 혜택, 운영비 지원 등 실질적인 경제 유인책 없이는 지방 이전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대학과 연계한 인재 양성, 정주 여건 개선까지 함께 이뤄져야 지방 분산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네이버클라우드 이동수 이사는 에이전틱 AI(Agentic AI) 기술 발전과 관련해 “AI 모델의 연산 복잡도가 수십 배 증가하면서 전력 소비도 30배에서 최대 200배까지 폭증할 수 있다”고 진단하며 “단순 공급을 넘은 냉각 효율, 전력 최적화, 저전력 AI 반도체 개발 등 기술·산업 정책 전반이 연계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에너지 클러스터 중심 지방 RE100 실현 가능...정부 일관된 전략 중요”
특히 전문가들은 “지방 분산형 데이터센터는 탄소중립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이 풍부한 지역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인근 발전소와 연결된 ‘에너지 클러스터’ 방식으로 전력을 자급하는 모델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채효근 전무는 “데이터센터는 전략적 디지털 산업시설로, 전력 소비가 많은 대신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면서 “지역 반발을 줄이려면 인식 전환과 함께 하이퍼스케일 센터와 분산형 에지센터를 병행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인허가 간소화, 세제 혜택, 신기술 기반 국산화 등 후속 대책을 검토 중이다. 산업부 최성준 전력계통혁신과장은 “데이터센터 하나가 5만 가구 에어컨 가동에 맞먹는 전력을 사용한다”며 “지방 이전을 통한 전력 수요 분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단기 지원 아닌 장기적 일관성 확보가 핵심"
다만 업계는 “방향은 옳지만 지속성 있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클라우드 업계 관계자는 “지방에 센터를 짓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수백억이 투입되는데, 정부가 중간에 정책 기조를 바꾸면 기업은 큰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단순 설비가 아니라 국가 산업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다뤄져야 한다”며 “최소 5~10년은 정책과 투자가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기업들도 적극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 분산과 무탄소 전원 전략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데 업계와 전문가 모두 이견이 없다. AI 산업을 뒷받침할 전력·인프라 전략이 국가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재정의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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