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유럽연합(EU)이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역외에서 수입되는 주요 산업 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밀하게 산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신(新) 무역 규제로 주목받고 있다. CBAM의 핵심은 MRV(Measuring Reporting Verification, 측정·보고·검증) 체계와 EU 배출권거래제(EU ETS, European Union Emissions Trading System) 등 유럽의 기존 탄소 규제 시스템과의 연계에 있다.
MRV(측정·보고·검증) 체계는 탄소배출 관리를 위한 핵심 절차로, 기업이나 수입업체가 자신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Measuring)하고, 이를 관련 당국에 보고(Reporting)하며, 독립된 기관의 검증(Verification)을 받아 신뢰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이다. 이 체계는 배출량 산정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보장해, 탄소규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서는 MRV 체계를 통해 수입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이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이에 근거한 탄소비용 부과가 가능해진다. MRV는 글로벌 탄소 감축 노력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국제 표준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EU ETS)는 EU가 2005년 세계 최초로 도입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표적 시장 기반 제도다. 이 제도는 1만1400여 개의 산업시설을 대상으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 총량에 상한을 설정하고, 각 기업에 ‘배출권(allowance)’을 배분한다. 기업들은 배출권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으며, 배출량이 할당량을 초과할 경우 추가 구매를 통해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현재 EU ETS는 전력생산, 제조업, 항공, 2024년부터는 해운까지 포함해 EU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5%를 관리하며, 적용 대상 온실가스도 이산화탄소에서 아산화질소, 육불화황 등으로 확대됐다. EU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제도의 단계적 확대와 강화에 나서고 있다
CBAM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수입업체는 자사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분기별로 보고서를 제출하는 한편, 검증된 배출량에 따라 ‘CBAM 인증서’를 구매 및 제출할 의무를 지닌다. 이는 유럽 기업에만 적용된 배출권 비용 부담을 역외 경쟁사에도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생산기지의 탄소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전되는 ‘탄소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다.
실제로, 2026년부터는 철강·알루미늄·비료·시멘트·전기·수소 등 주요 품목에 대해 연 1회 이상 현장 검증 및 인증서 구매·제출이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CBAM의 탄소량 산정 과정은 국제 표준에 입각한 MRV(측정·보고·검증) 기술을 기반으로 엄격하고 투명하게 진행된다. 수입업체는 제품의 생산 전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과학적·정량적으로 측정해야 하며, 산출된 수치를 유럽연합(EU)이 정한 양식에 맞춰 분기별로 보고한다.
이 과정에서 제출된 데이터는 제3의 독립된 검증기관에 의해 엄격히 검토 및 확인을 거치게 되며, 어떠한 정보도 자의적으로 조작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MRV 체계 덕분에, CBAM은 배출량 산정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3의 독립된 검증기관'은 주로 국제·국가적 기준에 따라 인증 받은 공인된 온실가스 검증기관을 뜻한다. 예를 들어, EU에서는 ISO 14065 및 ISO/IEC 17029 등의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기관을 ‘독립 검증인(Independent Verifier)’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이들은 CBAM 적용 대상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산정을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각국별로도 정부 지정 또는 인정받은 온실가스 검증기관들이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관리하는 공인 온실가스 검증기관들이 있으며, 이들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운영과 CBAM 대응을 위한 배출량 검증 업무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한국생산성본부인증원 기후변화인증센터와 같은 기관도 CBAM 배출량 검증 지원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CBAM의 제3자 검증기관은 국제적 공인 기준에 따라 독립성을 유지하며, 각국 정부나 EU 집행위원회가 인정한 전문 기관들이 검증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은 수입자의 배출량 보고서와 산출 근거를 과학적·절차적으로 검토해 CBAM 규정 준수를 보장한다.
CBAM 등 EU 탄소 규제에서 검증기관은 핵심적인 신뢰와 투명성 확보 장치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기업이나 수입업체가 보고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객관적 기준과 국제 표준에 맞게 산정되었는지를 독립적인 제3자 입장에서 평가·심사한다.
검증기관의 주요 역할은 △배출량 산정(MRV) 관련 데이터의 검토 △현장 실사 및 분석을 통한 사실 확인 △공식 검증보고서 발행 등이다. 이 과정은 기업의 자가진단만으로는 허위신고와 오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운 만큼, 규제 당국(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감독기관)이 공인한 외부 검증기관이 반드시 개입해 객관적이고 일관된 기준을 정립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검증기관은 곧 EU 규제체계의 신뢰성과 엄격함을 현장에서 뒷받침하는 실질적 집행자이자 감시자로, 기업과 당국 사이 투명성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이들의 공식 검증보고서는 CBAM의 최종 탄소비용 산정 근거로 활용됨으로써, EU가 추구하는 공정무역·탄소중립 규제의 기본 틀을 실질적으로 완성해주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EU는 엉성한 탄소 규정의 틈새를 이용한 ‘탄소누출’을 원천 차단하고, 동시에 유럽 내 무역 환경의 공정성과 글로벌 탄소중립 실현을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 용어 설명 :
· 아산화질소(N₂O, 亜酸化窒素), 육불화황(SF₆, 六弗化黃) = 온실가스 중에서도 지구온난화 지수가 특히 높은 비이산화탄소계 온실가스로 꼽힌다. 아산화질소는 주로 비료 사용이나 화학공정에서 발생하며, 이산화탄소보다 298배 강한 온난화 효과가 있다. 육불화황은 반도체 제조 등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데, 대기 중에서 수천 년간 잔존할 정도로 분해가 어려우며, 지구온난화 지수 역시 이산화탄소의 약 2만2800배에 달한다. EU는 이처럼 강력한 온난화 유발 물질까지 배출권거래제(EU ETS)로 규제 대상을 확대해,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저감 목표 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 ‘REPowerEU’ 전략 = EU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2022년 ‘REPowerEU’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은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도를 신속하게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대폭 가속화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EU 집행위원회는 REPowerEU를 통해 LNG 수입원의 다변화, 에너지 절약,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의 대규모 확대, 에너지 인프라 투자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30년까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지향한다. 최근 EU는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수입을 급격히 줄이면서도 LNG 및 대체 수입선을 확대해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전략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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