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거대한 발전소 몇 군데에서 전기를 만들어 전국 곳곳에 공급하는 ‘중앙집중형’ 시스템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원이 지역마다 다양하게 설치되고, 가정이나 건물에서도 전기를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발전이 분산되면서, 누가 전기를 만들고 누가 소비하는지 그 경계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예전에는 전기는 오직 ‘사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이 전기를 ‘팔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동시에 전기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시대에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바로 이때 주목받는 것이 ‘전력 거래 플랫폼’이다.
쉽게 말해, 전기를 사고파는 온라인 마켓 같은 역할을 하는 이 플랫폼은 단순한 거래를 넘어, 언제 얼마나 전기가 필요한지 실시간으로 조절하고, 가격도 자동으로 정하며, 전력망의 안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시스템이다.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플랫폼 실험들
한국에서도 이미 여러 기업과 기관이 이런 플랫폼 실증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서는 50MW 규모의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가 실제 전력 거래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여러 개의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 수요관리 시스템 등을 하나로 묶어 마치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용하는 기술이다. 한전, SK E&S, LG CNS 같은 민간 기업들도 각자 기술력을 바탕으로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를 중심으로 테슬라(Tesla)가 매우 흥미로운 에너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사가 보유한 여러 에너지 기술—예를 들어 주택용 태양광 패널(solar panel), 가정용 에너지 저장장치인 파워월(Powerwall), 그리고 전기차(EV)를 하나의 통합 시스템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연결된 설비들은 각 가정에서 생산한 전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는 직접 사용하거나 이웃과 공유하거나 심지어 전력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전기를 쓰는 소비자에서 벗어나, 전기를 직접 생산하고 관리하며 거래하는 ‘에너지 prosumer(생산자+소비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친환경 에너지 활용에 그치지 않고 집에서 남는 전기를 이웃이나 전력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실제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다. 즉, 에너지 자립은 물론이고, 전기를 통해 경제적 이익까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열고 있는 셈이다.
기술만으론 부족하다…시장은 신뢰 위에 세워져야
전력 거래 플랫폼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적·시장적 뒷받침이 함께 필요하다. 예를 들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들쭉날쭉하다. 이 때문에 언제, 얼마나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의 전력망은 특정 지역에 전력이 몰리면 수송에 물리적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그만큼 정교한 관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구조냐이다. 전기를 거래하고 수익을 나누는 기준이 불투명하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누구도 참여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제도와 기술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
현재 전력거래소는 제주에서 분산자원 입찰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정부도 중장기적으로 전력 중개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전력망 확충, 데이터 표준화, 수익 배분 체계 정비 등도 순차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것을 넘어, 전력을 거래하고, 참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전력거래플랫폼은 앞으로 재생에너지 중심 시대의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