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MR 개요/혁신형모듈원자로기술개발사업단 자료

[투데이에너지 안후중 기자]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뜨겁게 부상하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 목표 달성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면서, SMR은 기존 대형 원전의 한계를 넘어설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공장에서 주요 기기를 제작해 건설 현장에서 조립함으로써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강화된 안전성과 유연한 입지 조건, 특히 전력 생산을 넘어선 다양한 활용 가능성까지 갖춘 SMR이 과연 미래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현실적 과제를 심층 진단한다. /편집자 주

SMR 개발은 미국이 약 20개 설계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러시아(17개), 중국(9개) 등이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2030년경 본격적인 상용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기술적으로 SMR은 크게 3세대(Gen III), 3.5세대(Gen III+), 4세대(Gen IV)로 분류된다. 3세대는 기존 대형 원전 기술을 소형화한 것이며, 3.5세대는 여기에 일체형 원자로 설계, 외부 전원 없이 작동하는 피동 안전 계통 등 혁신 기술을 접목해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개념이다.

현재 개발 중인 경수로 기반 SMR 중 진정한 일체형 설계를 구현한 것은 미국의 뉴스케일 파워(NuScalePower),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의 스마트(SMART), 한국수력원자력(KHNP)의 아이에스엠알(i-SMR) 정도가 꼽힌다. 반면 4세대는 물이 아닌 소듐, 헬륨가스, 용융염 등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고온가스로(HTGR), 소듐냉각고속로(SFR), 용융염원자로(MSR) 등으로, 미국의 테라파워(TerraPower), 엑스에너지(X-Energy) 등에서 개발 중이나 상용화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초기 시장에서는 비등경수로(BWR) 기반인 GE히타치의 BWRX-300 모델이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가압경수로(PWR)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부품 수가 적어 건설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신속한 대체를 위해 BWRX-300 건설을 추진 중인데, 이는 시급성과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한 i-SMR 사업 관계자는 “BWRX는 후쿠시마 사고에서 드러난 안전성 문제와 격납 건물 설계의 차이 등 단점도 있지만, 경제성과 건설 속도라는 확실한 장점 때문에 2030년대 초기 SMR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역시 에너지 안보 강화와 2050년 탄소 중립목표 달성을 위해 SMR 개발을 국가적 우선순위로설정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정책이 폐기되고 원자력 발전 생태계 복원 기조가 강화되면서SMR 개발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는 2038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5.2%로 확대하고 최소 1기의 SMR(0.7GW 규모)을 포함한 신규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며,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목표 달성에도 SMR을 포함시켰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총 3992억원(약 3억 2천만 달러) 규모의 ‘혁신형 SMR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2025년에는 1억 달러 이상의 금융 지원을 제공하며, 경주에 3000억원 규모의 SMR 국가 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등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SMR 모듈화/혁신형모듈원자로기술개발사업단 자료

또한 42개 공공 및 민간 기관이 참여하는 ‘SMR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켜 기술 개발과 산업 생태계 조성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 SMR 개발의 효시는 KAERI가 개발한 SMART다. 100~110 MWe급 PWR인 SMART는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SDA)를 획득하며 기술력을 입증했지만, 이후 실증로 건설 지연 등으로 상업화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최근 안전성과 경제성을 개선한 SMART100 모델이 2024년 9월 SDA를 획득했으며, KAERI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협력하여 캐나다 등 해외 수출을 추진 중이다. 캐나다 시장의 육상 운송 요구 조건을 맞추기 위해 원자로 직경을 줄인 SMART-C모델도 개발되었다.

그러나 한 i-SMR 사업 관계자는 “SMART는 냉각재로 붕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관련 계통이 복잡하고 부식 관리 등 운영 부담이 있으며, 경제성 측면에서도 전력 생산보다는 해수 담수화나 지역난방용 증기 공급에 더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SMART의 경험과 기술적 한계를 발판 삼아 KHNP 주도로 개발 중인 것이 바로 차세대 SMR인 i-SMR이다. 170 MWe급 통합형 PWR인 i-SMR은 SMART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고 세계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개발 목표를 두었다.

i-SMR의 핵심 혁신 기술은 세 가지다. 첫째, 붕산없이 운전하여 화학 및 체적 제어 계통(CVCS)을 제거함으로써 경제성과 안전성을 높인 점, 둘째, 제어봉 구동 장치(CRDM)를 원자로 내부에 설치하여 제어봉 이탈 사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점, 셋째, 하나의 건물 안에 표준 4기(총 680 MWe)의 원자로 모듈을 배치하여 부지 효율성을 높이고 다양한 활용을 가능하게 한 점이다.

i-SMR의 진정한 강점, ‘다목적 활용 능력’

i-SMR과 같은 다수기 모듈형 SMR의 가장 큰 차별점은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선 다목적 활용 능력에 있다. 이는 SMR이 단순한 ‘소형’ 원자로가 아닌, 미래 에너지 시스템의 ‘다재다능한 해결사’가 될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 i-SMR 사업 관계자에 따르면, 하나의 건물에 배치된 여러 개의 모듈은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여 운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4개의 모듈이 있다면, 일부는 전력 생산에 집중하고, 다른 모듈은 발생하는 증기(약 300°C)를 활용해 지역 난방에 필요한 온수를 공급하거나, 열교환기를 통해 다양한 온도의 공정열(약 200°C~600°C 범위)을 인근 산업 단지에 공급

할 수 있다. 또한, 생산된 전기나 열을 이용해 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생산하는 청정 수소 생산 기지로서의 역할도 가능하다. 최근 저온 수전해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i-SMR과 같은 경수로에서 나오는 증기만으로도 효율적인 수소 생산이 가능해졌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공급의 안정성과 유연성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연료 교체 등을 위해 주기적인 정비가 필요한데, 이때 특정 모듈이 정지하더라도 다른 예비 모듈을 가동하여 전력이나 열 공급을 중단 없이 지속할 수 있다.

이는 24시간 공정 가동이 필수적인 산업체나 안정적인 난방 공급이 중요한 지역 사회에 매우 큰 장점이다.

iSMR 자율운전 시스템/혁신형SMR기술개발사업단 자료

또한, 각기 다른 온도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여러 수요처에 대해 각 모듈의 열교환기 효율을 조절하여 맞춤형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며, 이는 복잡한 배관 라우팅 없이도 효율적인 열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다목적 활용 능력은 SMR이 단순히 기존 대형 원전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제철, 화학, 시멘트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화석 연료를 태워 얻는 고온의 열에 의존하고 있는데, SMR은 이러한 산업 공정에 필요한 열을 탄소 배출 없이 공급할 수 있는 거의유일한 대안이다.

물론 800°C 이상의 초고온 열이 필요한 일부 공정에는 HTGR과 같은 특수 SMR이 더 적합할 수 있지만, 상당수 산업 공정과 지역 난방등에는 i-SMR과 같은 경수로 기반 SMR로도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

또한, AI 데이터센터와 같이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필요로 하는 신산업 분야에도 SMR은 최적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KHNP는 2028년 SDA 획득, 2031년 최초 호기 착공, 2035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i-SMR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노르웨이, 스웨덴 등과 사업 협력 MOU를 체결하고 수출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선 국내 운영 실적 확보가 필수적이기에, 정부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첫호기 건설 계획을 반영했으며, 국내 건설과 해외 수출을 각각 담당할 별도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 외에도 한국전력기술(KEPCO E&C)은 HD현대중공업과 협력하여 해상 부유식 SMR 인 BANDI의 개념 설계를 진행 중이며, KAERI는 산업 공정열 공급을 위한 HTGR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와 협력도 활발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 제작 분야의 글로벌 리더를 목표로 뉴스케일, X-Energy 등에 투자하고 원자로 용기 등 핵심 기자재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있고, 현대엔지니어링은 미국의 홀텍과 SMR-160/300 모델의 전 세계 턴키 공급 계약을 맺고 미국 미시간주 팔리세이즈 부지 건설을 추진하는 등 미국과 영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은 뉴스케일 외에도 스웨덴 Kärnfull Next(2032년 가동 목표 데이터센터전력 공급), 에스토니아 Fermi Energia(2035년 상업 운전 목표) 등 유럽 유망 SMR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으며, KHNP 와도 해외 원전 사업 공동 개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SK그룹은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에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하며 SMR 사업에 진출 했고,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역시 테라파워, 코어파워 등과 협력하며 2030년까지 약 2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SMR 추진 선박을 개발하는 등 해운 분야 탈탄소화를 준비 중이다.

상용화 길목의 난제 : 경제성, 규제, 그리고 신뢰

SMR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성이다.

초기 투자 비용과 건설 기간 단축 효과가 기대되지만, 현재로서는 단위 출력당 건설 단가가 대형 원전보다 높아 가격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 여러 호기를 반복 건설하며 얻는 학습 효과와 부품 대량 생산을 통해 비용을 낮추는 ‘Nth-of-a-kind(NOAK)’ 전략이 필수적이지만, 미국의 뉴스케일이 초기 예상보다 건설 단가가 2배 이상 치솟아 첫 상용 프로젝트가 좌초된 사례는 SMR의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i-SMR의 경우 후속기(NOAK) 건설 단가를 kWe당 3000달러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핵심 기기인 원자로 압력 용기 제작에만 통상 3~4년이 소요되는 점도 공기 단축의 제약 요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SMR 상용화의 최대 복병은 ‘규제 불확실성’이다.

아직 SMR 고유의 설계 특성(일체형, 피동 안전 계통 등)과 다양한 운영 방식(다수기 모듈, 열 활용 등)을 반영한 규제 요건과 심사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개발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i-SMR의 표준설계 인가 목표 시점인 2028년까지 관련 규제 요건이 완비될지 불투명하며, 만약 규제 마련이 지연될 경우 사업 전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 i-SMR 사업 관계자는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나치게 관료화되었고, 일부 시민단체의 소송 등을 우려해 새로운 기술이나 설계 변경에 대한 유연한 기술적 판단(Engineering Judgement)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이는 혁신 기술 도입을 가로막고 불필요한 개발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캐나다 규제기관(CNSC)은 ‘벤더디자인 리뷰(VDR)’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며 주목받고 있다. VDR은 SMR 개발사가 비용을 지불하면 규제기관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설계의 규제 적합성을 검토해주는 일종의 유료 컨설팅 서비스다. 이를 통해 개발사는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고, 규제기관은 다양한 SMR 설계에 대한 이해도와 심사 역량을 높여 현재 캐나다는 전 세계적으로 SMR 규제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VDR 통과 여부가 국제 SMR 프로젝트 입찰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로 부상하면서, 한국형 SMR의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VDR 참여 또는 이에 준하는 규제 검증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밖에도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및 처분 방안 마련은 원자력계 전체의 숙제이며, SMR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 확보와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통한 수용성 증대 노력도 필수적이다. i-SMR과 같이 다목적 활용을 전제로 하는 SMR의 경우, 원자력 시설에서 생산된 열을 비원자력 산업 시설이나 지역 난방 시스템에 안전하게 연계하기 위한 기술 기준 및 규제 요건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iSMR의 혁신설계/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기술개발사업단 자료
iSMR의 혁신설계/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기술개발사업단 자료

다재다능함이 경쟁력… 실현은 ‘과제 해결’에 달려

SMR은 탄소 중립 시대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기존 대형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특히 전력 생산을 넘어 산업 공정열 공급, 지역 난방, 수소 생산 등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목적 활용 능력은 SMR만의 독보적인 강점이자, 미래 에너지 시장의 진정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핵심 동력이다.

이는 단순히 전력망 탈탄소화를 넘어, 해결이 더 어려운 산업 부문의 탄소 감축과 청정 수소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다. 기술적 완성도 제고와 경제성 확보는 물론, 무엇보다 시급한 규제 불확실성 해소와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관건이다. 글로벌 SMR 시장 선점을 위한 각축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가진 기술력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 의지를 바탕으로 당면 과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SMR 시대를 주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MR이 가진 다재다능함이 실제 경쟁력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함께 제도적 기반 마련과 사회적 신뢰 구축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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