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추가 공사비 1조4000억원을 두고 영국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서 분쟁을 벌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모회사-자회사 관계인 두 공기업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애초 계약 조항 때문이다. 한전이 UAE 원자력공사(ENEC)와 맺은 원전 수주 계약에 '공사 관련 분쟁 발생 시 LCIA 중재로 해결하고, 계약의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고, 한전은 한수원 등 국내 업체들과도 동일한 조항을 포함해 후속 계약을 체결했다.
한수원은 원전 시공 지연과 수차례 설계 변경 과정에서 인건비 등 비용 부담이 커졌으나 한전이 비용 정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전은 "현지 발주처에서 대금을 받아야 정산이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정산 협상이 결렬되자 한수원은 지난해 5월 계약에 따라 LCIA에 한전을 상대로 중재를 신청했다. 한수원은 김·장 법률사무소가, 한전은 법무법인 피터앤김이 대리하고 있으며, 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인 점을 고려해 양측은 영국 현지 로펌도 각각 선임했다. 한전과 한수원이 지불한 법률 비용만 수백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중재 전문가들은 원발주처와 원수급인 사이에 정해진 계약 조건을 이후 원수급인과 하수급인 간의 계약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문제 발생 시 일관되게 대응하거나 함께 해결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원발주처인 ENEC에서 '하수급인과의 계약도 모두 LCIA 중재로 해결하도록 정하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통 이러한 맥락에서 동일한 계약 구조가 원발주처-원수급인-하수급인 순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전과 한수원도 당초 계약을 변경해 한국에서 중재를 진행하려고 시도했지만 여러 여건을 충족하지 못해 무산됐다고 한다. 국제중재 분야에 밝은 한 변호사는 "이 사건도 해외 건설 프로젝트가 아니라 단순히 한수원과 한전 사이의 국내 문제였더라면, 굳이 외국어 중재나 해외 기관을 선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해외 발주처가 관련된 프로젝트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국 중재기관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사이의 분쟁 사건을 외국 중재 기관에서 해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고 국부 유출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계약 당사자가 모두 한국 공기업이고, 사건 관계자와 증인이 대부분 한국에 있어 한국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국제 중재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한국 기업들, 특히 공기업들이 해외 중재기관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나름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한 특수한 사정이 없다면 가급적 국내 중재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KCAB)을 통해 중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중재 비용 절감과 국부 유출을 막는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국제중재 전문가도 "국내 기업들이 KCAB가 아닌 해외에서 중재 사건을 진행하는 현재 관행은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KCAB에서도 이러한 관행을 뼈 아프게 여기고 자성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내 공기업들이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발주하거나 해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 KCAB를 중재기관으로 지정하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기관의 신뢰도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재는 법원 재판과 달리 '비밀 유지'가 기본이어서 기업들의 경영권 분쟁이나 개인사 유출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국내 공기업간의 문제를 해외 중재기관에 맡기는 것에 국민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