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탈탄소만으론 부족…복합 목표 동시 달성해야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단순히 탈탄소 목표 달성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이 핵심 전략 변수로 부상하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접근 방식도 근본적 변화를 맞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15일 발표한 '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장' 보고서는 이같은 변화의 배경과 시사점을 종합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정학적 리스크와 인프라 제약이 맞물리면서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방식이 한층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프라 구축비 6배 급증…실행 단계 진입
가장 주목할 변화는 에너지 전환이 기술 논의를 넘어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이다. 대규모 전력망 건설 비용이 약 6배나 증가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허가 지연, 공급망 병목, 기술 복잡성, 인력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제약은 단순히 전환 속도를 늦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 지지 기반까지 약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5년간 저소득 가구의 에너지 비용 부담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산업계가 이제 본격적인 '자산 구축 단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4년부터 2030년까지 글로벌 에너지 자본지출은 약 7조 달러에서 10조 달러로 50%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세계 GDP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로, 투자 대부분은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비용'이 경제성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이 과정에서 자본비용이 에너지 시스템의 경제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공급망은 아직 이러한 자본집약적 전환 단계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모리스 번스 BCG 대표 파트너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지속 여부'가 아니라 '방식과 속도'"라며 "각국은 인프라 구축을 앞당기고 비용을 낮추는 전략을 통해 에너지 안보·경제성·탈탄소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치 레서 BCG 글로벌 회장도 "에너지 관련 배출의 약 3분의 2는 이미 상용화됐거나 곧 상용화될 기술을 통해 줄일 수 있다"며 "국가별 여건에 맞는 맞춤형 접근과 일관된 정책이 전환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민관 협력과 유연한 전원 믹스 필요
한국의 경우 제조업과 첨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급 안정성 및 경제성 확보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백진영 BCG 코리아 MD 파트너는 "정부의 실용적 에너지 전환 기조 속에서 전력 공급 안정성, 합리적 비용, 탄소중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시장·기업 간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력구매계약(PPA) 확대와 함께 기저 전원의 역할을 고려한 유연한 전원 믹스 설계가 필요하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수도권 중심의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송전망 확충과 계통 접속 지연 해소 등 인프라 과제를 민관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환 모델의 선순환 구조 형성이 관건
결국 신재생 확대와 함께 원전의 안정적 운영, ESS와 가스 발전 등 유연성 자원의 고도화, 그리고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수요처의 계통 참여까지 아우르는 선순환 구조 형성이 성공적인 한국형 전환 모델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환이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닌 실행의 문제가 된 만큼,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전략적 대응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