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국내 도시가스 산업은 지난 40여 년간 안정적 공급과 안전 관리 체계 구축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가스배관망의 노후화, 복잡해진 도시 인프라, 기후재해로 인한 리스크 증가 등 새로운 위험 요인이 대두되면서 기존 경험 기반 안전관리 체계만으로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최근 일부 도시가스 사업자는 GIS(지리정보시스템), IoT(사물인터넷), AI 분석 기술을 활용해 배관망 위치와 심도, 시설물 정보 등을 실시간 데이터 기반 안전관리 체계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업계로의 확산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지역별 편차가 큰 상황이다.전국적으로 표준화된 GIS 데이터 플랫폼이 부재, 각사별로 독립 구축해 정보 공유가 제한적이다.
일부 지자체 및 사업자는 드론을 활용한 대규모 배관망 점검을 시범 운영 중이나 상용화 단계까지는 기술적·비용적 제약이 크다. 미래엔서해에너지와 맵퍼스 사례처럼 실시간 최적 경로 안내 및 긴급 대응 체계 도입이 시도되고 있으나, 전국적 확산을 위해서는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 해외 사례: ‘통합 스마트 안전관리 플랫폼’ 구축 가속화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GIS·IoT·AI·빅데이터를 통합한 ‘스마트 파이프라인 관리 시스템(Smart Pipeline Management System)’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PHMSA(파이프라인 및 위험물 안전청)가 주도해 전국 단위 GIS 기반 배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AI 분석으로 사고 위험을 사전 예측한다. 미국과 영국 등은 광섬유 센서를 배관에 연계해 주변 지반의 진동·음향 변화를 실시간 감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 기술은 굴착 사고, 지반 침하, 외부 충격 등을 조기에 탐지할 수 있어 사고 예방률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유럽은 각국 가스망을 EU 차원에서 통합 관리해 데이터 표준화 완료, 긴급대응 속도 30% 이상 단축하고 있다.
독일과 스웨덴은 도시가스 배관망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IoT(사물인터넷) 센서와 AI(인공지능) 분석 기술을 접목한 ‘예지보전(Predictive Maintenance)’ 시스템을 본격 도입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배관에 부착된 IoT 센서가 실시간으로 압력, 온도, 유량, 진동, 배관 내 유체의 흐름 등을 측정하고, 이를 중앙 제어 시스템으로 전송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AI 알고리즘에 의해 지속적으로 분석되며, 배관의 정상 작동 범위에서 벗어난 이상 징후나 반복되는 경향성, 소재의 열화 패턴 등을 조기에 탐지한다.
특히 독일에서는 수년간 축적된 배관 운영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을 통해, 배관 부식의 진행 속도나 이음부의 손상 가능성, 특정 환경에서의 재료 피로 누적 정도 등을 정밀하게 예측하고 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유지보수 필요 구간을 사전에 선별해 선제적으로 점검 및 교체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불시의 누출 사고나 폭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스웨덴 역시 유사한 시스템을 통해 도시가스 배관망의 전체 수명 주기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동절기처럼 수요가 급증하고 압력 변화가 심한 시기에도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AI가 실시간 예측하는 이상징후에 따라 가변 압력 조절 및 응급 점검을 자동 수행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같은 예지보전 시스템의 도입은 △긴급 복구 비용 절감 △불필요한 전수 점검 최소화 △고위험 구간 선제 조치 △사고율 감소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으며, 기존의 정기적 정비 방식에서 ‘데이터 기반 예측형 유지관리’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스위스는 도시가스 인프라의 장기적 안정성과 효율적 유지관리를 위해,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한 ‘배관 열화 예측 알고리즘(Deterioration Prediction Algorithm)’을 개발·운용하며 선제적 안전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은 가스배관에 사용된 금속 재질의 부식 진행도, 재료 피로도, 지중 온도·습도·지반 수분률, 기후 변화로 인한 반복 동결·해동 현상 등 다양한 열화 요인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학습시킨 모델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특히 스위스는 알프스 인근의 높은 지하수위와 겨울철 극심한 기온 차 등 지형·기후 특성으로 인해 배관 열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이 존재하는데, 이 같은 환경적 리스크 요인을 정량적으로 반영한 AI 예측 모델을 통해 각 배관 구간의 예상 수명과 구조적 한계 도달 시점을 사전에 산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속관의 부식률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거나, 지반 침하와 관련된 응력 집중 구간에서 열화 신호가 지속적으로 감지되면, 알고리즘은 해당 구간을 ‘조기 유지보수 대상’으로 분류하고, 교체 또는 보강 시점을 자동 제안한다.
스위스 도시가스 공기업들은 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연례 유지보수 계획을 재편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 3년간 배관 파손 사고를 35% 이상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기술은 △불필요한 조기 교체 방지 △고비용 긴급복구 최소화 △소재 수명 극대화 등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향후 AI 모델에 탄소배출량, 지반 진동, 도시 개발계획 등을 통합해 ‘도시 전역 디지털 트윈 기반 배관 열화 예측 시스템’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프랑스와 캐나다는 지하에 매설된 배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GPR(지중 레이더) 기술에 AI 딥러닝을 접목해, 레이더 반사파 데이터를 자동 분석하고 위험 요소를 조기에 식별하는 체계를 구축 중이다. 이는 육안 확인이 어려운 매설구간의 정밀 점검을 가능케 한다.
일본은 지진·노후 인프라·도시 밀집 구조 등 복합적인 도시 위험 요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AI 기반 ‘가스 누출 조기경보 시스템(Gas Leak Early Warning System)’을 전국 주요 대도시 지역에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IoT 센서, AI 분석 플랫폼, 스마트 복합소재 배관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구조에 있다. 특히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인구 밀집지역에서는 이중 벽 구조의 복합소재 배관을 본격 적용해 도시가스 사고의 ‘제로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 복합소재 배관은 외벽과 내벽 사이에 압력·온도·가스농도·진동 감지 기능을 가진 IoT 센서가 내장되어 있으며, 실시간으로 배관 내부의 상태를 감시한다. 예컨대,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급변하거나, △가스 성분 중 특정 화학물질이 누출 징후로 감지되거나, △외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동이나 충격이 감지될 경우, 센서가 즉각 신호를 송출하고 AI는 이를 기반으로 ‘사고 가능성 점수(Risk Score)’를 산출한다.
이 경보 시스템은 일반적인 누출 감지보다 수 시간~수일 빠르게 위험 징후를 포착할 수 있어, 운영자가 사전에 현장을 점검하고 대응함으로써 사고 발생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고위험 지역에서 효용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24년 기준 해당 시스템이 도입된 지역에서의 사고율이 기존 대비 60% 이상 감소했다고 발표했으며, 앞으로 이 기술을 전국 47개 도도부현의 도심지에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이러한 기술 고도화는 △지진 발생 직후 자동 누출 탐지 기능 △위험 구간 선별 및 유지보수 우선순위 자동화 △스마트시티 통합 인프라와의 연동 가능성 등에서도 그 잠재력이 높게 평가되며,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도시가스 사업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데이터 표준화·AI 분석 적용·플랫폼 통합에서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현재 사업자별 GIS 데이터가 제각각 관리되고 있어, 정부 주도 표준화 플랫폼 필요성이 대두된다. 국가 차원의 ‘도시가스 배관망 디지털 트윈’ 구축이 장기적으로 요구된다.
스마트 안전관리 시스템은 초기 투자비가 크지만, 사고 예방 효과와 장기 유지보수 비용 절감으로 회수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부 차원의 세제·보조금 지원, 민간 금융 연계가 필요하다.
■ 법제도 개선 및 규제 샌드박스 활성화
현행 도시가스사업법과 안전관리 규정은 여전히 아날로그 프로세스 중심이다. 신기술 실증을 유연하게 허용하고, 데이터 공유를 촉진하는 법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고 패턴, 기후재해, 지반 변화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사전 위험 예측 기능을 갖춘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국내 도시가스 산업은 안전관리 선진화의 다음 단계로 ‘스마트화’ 전환을 앞두고 있지만, 데이터 표준화 부재와 투자 부족, 제도적 한계가 주요 걸림돌로 지적된다.
현재 한국 도시가스 산업은 AI 기반 예측형 안전관리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스마트 시스템은 초기 투자비가 크지만, 사고 예방과 유지보수 효율성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차원의 ‘도시가스 디지털 트윈’ 구축, 표준 플랫폼 통합,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
해외 주요국 사례처럼 국가 차원의 통합 플랫폼 구축과 민관 협력 확대가 이루어진다면, 한국 도시가스 산업도 세계적 수준의 ‘예측 기반 안전관리 체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용어 설명 :
· PHMSA(Pipeline and Hazardous Materials Safety Administration, 파이프라인 및 위험물 안전청) = 미국 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파이프라인 및 위험물의 안전한 수송과 관리를 담당한다. 2004년 설립된 PHMSA는 전국의 천연가스, 액체 석유, 기타 위험물질을 운송하는 파이프라인의 안전 규제와 감독, 사고 예방을 위한 기준과 지침을 마련하며, 관련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최근에는 GIS(지리정보시스템) 기반 배관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AI 분석 기술을 활용해 파이프라인 사고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응 체계를 강화하는 등 첨단 안전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 도시가스사업법과 안전관리 규정 = 도시가스의 생산, 공급, 저장, 판매 및 안전관리에 관한 기본적인 법적 틀을 제공하는 국내 주요 법률 체계다. 도시가스사업법은 사업자의 등록, 시설 설치 및 운영 기준, 가스 공급의 안정성 확보 및 소비자 보호를 규정하고 있으며, 안전관리 규정은 가스 시설의 안전 점검, 사고 예방 조치, 긴급 대응 체계 구축 등 가스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관리 기준과 절차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행 법과 규정은 대부분 문서 기반의 아날로그 프로세스에 의존해 디지털 전환이 미흡한 상태로, 효율적인 안전 관리를 위한 시스템 개선 및 자동화 필요성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