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옮기고 있다./ 출처 KBS TV 캡쳐
소방관들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옮기고 있다./ 출처 KBS TV 캡쳐

[투데이에너지 장재진 기자] 지난 26일 저녁,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에서 발생한 화재가 약 22시간 만인 27일 오후에야 비로소 완전 진화됐다.

이 사고는 단순한 화재를 넘어 국가 중요 전산 시스템의 취약성과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였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27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화재는 5층 전산실에 있던 리튬이온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작업 중 발생했으며, 초기 진압의 어려움과 광범위한 피해는 예고된 위험이 현실화된 결과로 분석된다.

이번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배터리 이설 작업 과정에서의 치명적인 부주의로 지적됐다. 배터리를 공급한 업체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작업 당시 UPS 전원을 반드시 차단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공급된 상태에서 케이블을 해체하다가 쇼트(단락)가 발생하여 최초 발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중요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기본적인 안전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심각한 관리 소홀을 보여주었다. 이는 지난 2022년 SK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톡 장애 사태와 같이 '인재'가 시스템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화재가 단순히 작업자의 부주의를 넘어선 구조적인 안전 관리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화재가 발생한 5층 전산실에는 384개의 리튬이온배터리와 중요 전산 정보가 담긴 서버들이 함께 있었다. 문제는 이들 사이의 간격이 단 60cm에 불과했으며, 서버 간 간격 또한 1.2m에 불과했다는 점이.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배터리와 국가 핵심 서버가 이토록 밀집된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시설 배치 및 안전 설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밀집 현장은 항상 화재 위험에 대비해야 하며, 리튬이온배터리 특유의 열폭주 현상 때문에 배터리 화재가 인근의 다른 배터리로 옮겨붙지 않도록 1차적으로 차단하는 설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는 이러한 화재 확산 방지 설비가 미흡하여 피해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중에는 열전이 차단재와 같이 화재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제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규정상 20kWh 이상의 리튬 배터리를 전용 건물 외 장소에 시설할 경우 랙 간 1m 이상 이격해야 하지만, 내화구조의 벽이 삽입된 경우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이 국정자원 전산실의 좁은 간격 문제를 야기했거나, 규정 준수 여부와 더불어 내화구조 벽의 실질적인 화재 대응 능력이 충분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리튬이온배터리 화재는 다량의 물을 필요로 하지만, 서버 등 민감한 전산 장비가 함께 있는 특성상 소방 당국은 물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어려워 진압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또한, 전산실의 이중벽 구조와 좁은 간격은 소방대원의 접근성과 소방 활동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려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원인 분석이 나온다.

이번 국정자원 화재는 국가 핵심 기반 시설의 안전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개선이 시급함을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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