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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에너지 안후중 기자]

원자력 발전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가장 경제적인 발전원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발전소 해체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라는 수십 년, 혹은 수만 년에 걸친 장기적인 비용 부담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러한 ‘숨겨진 비용’을 포함할 경우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은 기존 인식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에너지 정책 결정에 있어 보다 포괄적인 비용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편집자 주]

균등화발전비용(LCOE)과 기존 인식

발전원의 경제성을 비교하는 표준 지표는 균등화발전비용(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LCOE)이다. LCOE는 발전소의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건설비, 연료비, 운영유지비, 해체 및 폐기물 처리 비용 등을 총 발전량으로 나누어 kWh당 평균 비용을 산출하는 개념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KEEI), 전력거래소(KPX) 등 국내 기관의 자료를 종합하면, 해체 및 폐기물 관리 등 장기 비용을 제외하거나 일부만 반영한 기준 LCOE는 원자력이 2020-2022년 기준 약 52원에서 68원/kWh 사이로 추정된다. 이는 다른 주요 발전원과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23년 추정치 기준으로 신규 석탄 발전은 글로벌 벤치마크 약 102원/kWh, 태양광은 123원에서 144원/kWh, 신규 액화천연가스(LNG)는 글로벌 벤치마크 약 126원/kWh, 육상풍력은 166원에서 168원/kWh, 해상풍력은 271원에서 300원/kWh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 수치만 보면 원자력의 경제적 우위는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계산에서 누락되거나 과소평가되기 쉬운 해체 비용과 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LCOE는 국제 수준보다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KEEI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태양광 LCOE는 글로벌 벤치마크 대비 2.1~2.5배, 육상풍력은 약 3배, 해상풍력은 주요국 대비 1.3~2.4배 높다. 이는 높은 토지 비용, 복잡한 인허가, 주민 수용성 문제, 미성숙한 공급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체 비용

원전 해체는 영구 정지 후 사용후핵연료 냉각·반출, 제염, 시설물 철거, 폐기물 처리, 부지 복원까지 이어지는 길고 복잡한 과정이다. 국내 첫 영구 정지 원전인 고리 1호기의 경우, 해체 비용 추정치가 계속 변화해왔다. 2015년 정부 고시 기준 6437억 원이었던 것이, 2020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해체 계획서 초안에서는 8,129억 원으로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최대 1조 원까지 언급하기도 한다.

현재 한수원이 해체 충당금 적립 기준으로 삼는 공식 추정 비용은 1기당 6437억 원 수준이지만, 고리 1호기 사례에서 보듯 실제 비용은 이를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상업용 원전 해체 경험이 전무하여, 실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술적 문제나 비용 증가 위험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해체 경험이 많은 미국(약 7800억 원), 독일(약 8590억 원), 일본(약 9590억 원) 등의 추정치가 한국보다 높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고리 1호기의 해체 예상 비용(8,129억 원)과 총 수명 기간 발전량(155,260 GWh)을 기준으로 단위 발전량당 해체 비용을 계산하면 약 5.2원/kWh이 나온다. 이는 현재 LCOE 계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는 추가 비용이다.

끝나지 않은 과제, 방사성 폐기물 관리

원자력 발전은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사용후핵연료는 최소 수만 년 이상 안전하게 격리해야 하는 물질로, 현재 원전 내에 임시 저장 중이며 최종 처분 방식과 부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에서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폐기물 관리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한수원은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현재 적용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은 경수로 다발당 약 3억 2천만 원, 중수로 다발당 약 1,320만 원이며, 중·저준위 폐기물은 200L 드럼당 약 1511만 원 또는 1219만 원 수준이다.

문제는 이 부담금 단가가 2013년 이후 한 번도 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총비용이 최소 64조 1천억 원으로 추산되는 상황과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할 때, 향후 단가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에서는 현재 적립되는 비용이 실제 필요한 총비용에 크게 못 미쳐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단위 발전량당 폐기물 관리 비용을 정확히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기존 연구와 정책 논의, 부담금 단가 등을 종합하면 대략 10원에서 15원/kWh 범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상당한 불확실성을 내포하며, 특히 향후 부담금 인상 폭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장기 비용 포함 시 원자력 LCOE 재산정

앞서 살펴본 기준 원자력 LCOE(중간값 약 60원/kWh)에 추정된 장기 비용(해체 비용 약 5.2원/kWh + 폐기물 관리 비용 약 10~15원/kWh)을 합산하면, 원자력 발전의 재산정된 LCOE는 약 75.2원에서 80.2원/kWh 범위로 추산된다.

이는 기존의 기준 LCOE(52~68원/kWh)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이며, 일부에서 사후처리비용이 이미 포함되었다고 주장하는 52원/kWh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재산정된 비용은 해체 및 통상적인 폐기물 관리 비용만을 고려한 것으로, 사고 위험 비용 등 다른 외부 비용까지 포함하면 더 높아질 수 있다. 2021년 한국자원경제학회 보고서는 사고위험비용 등을 포함할 경우 원자력 LCOE가 97.55원/kWh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좁혀진 격차, 미래 에너지 믹스 방향은?

장기 비용을 포함한 재산정 LCOE(75.2~80.2원/kWh)를 기준으로 다른 발전원과 비교하면, 원자력은 여전히 가장 저렴한 발전원 지위를 유지한다. 그러나 2위인 신규 석탄 발전(글로벌 벤치마크 약 102원/kWh)과의 비용 격차는 기존보다 크게 줄어든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용의 동적인 변화 가능성이다. 원자력의 장기 비용은 해체 경험 부족, 폐기물 관리 부담금 인상 가능성 등으로 인해 현재 추정치보다 더 높아질 위험을 안고 있다. 반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LCOE는 기술 발전과 규모의 경제 효과로 지속적인 하락이 예상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2030년경 국내 태양광 LCOE가 원자력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해체 및 폐기물 관리 비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이를 포함할 경우 원자력의 경제성은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비록 현재 시점에서는 여전히 비용 우위를 보이지만, 그 격차가 줄어들고 있고 미래에는 재생에너지와의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미래 에너지 믹스 결정은 단순히 현재의 기준 LCOE 비교를 넘어, 장기 비용의 불확실성, 기술 발전 추세, 탄소 배출 감축 효과, 에너지 안보, 사회적 수용성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원자력 장기 비용의 투명한 공개와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 마련, 그리고 국제 수준에 비해 높은 국내 재생에너지 비용을 낮추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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