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러시아산 가스 금단' 선언…현실은 '고통의 마지막 1마일'이다. /이미지 편집
EU의 '러시아산 가스 금단' 선언…현실은 '고통의 마지막 1마일'이다. /이미지 편집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유럽연합(EU)이 2027년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핵연료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최종 로드맵을 공개했다. 브뤼셀은 “설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다시 러시아 연료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했지만, 정치적 선언과 현실의 간극은 여전히 깊다.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인 댄 요르겐센(Dan Jørgensen)은 “푸틴 대통령은 가스를 정치 무기로 삼았다”며, 더 이상 러시아 에너지에 종속되는 것은 안보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이행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징적 제스처에 그칠 수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 2027년 '러시아산 가스 제로' 가능할까?

새 전략은 기존 스팟계약 해지 의무화, 러시아산 LNG 및 터크스트림(TurkStream) 송유관 제한, 핵연료 단계적 중단 등을 담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급조된 RePowerEU의 연장선이자, 그 실행방안에 가까운 셈이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약하고, 실제 계약 주체인 민간 에너지 기업들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유럽정책센터(EPC)의 필립 라우스버그(Philipp Lausberg) 분석가는 “궁극적으로 결정은 기업이 내릴 것”이라며, 정치적 선언 이상의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특히 EU 전체 가스 수입에서 러시아 비중은 2021년 45% → 2024년 19%로 감소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산 LNG 수입량은 오히려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24년 EU의 러시아산 LNG 지출은 전년 대비 5.5% 증가했으며, 이는 미국에 이어 EU의 2위 공급국 위치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 유럽 내부 분열과 '대체 공급' 현실

법안 발표 직전까지도, 헝가리·슬로바키아 등 친러 국가와 발트 3국·폴란드·북유럽 등 반러 성향 국가들 간 갈등이 치열했다. EU는 만장일치가 아닌 가중다수결(QMV) 방식을 택해 정치적 반발을 일부 무력화했지만, 러시아 제재를 둘러싼 내부 균열은 여전히 존재한다.

독일 보수정당 일부에서는 “언젠가는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으로 가스가 다시 흐를 수도 있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으며, 이탈리아도 “에너지 비용 감축 목적이라면 러시아산 가스 재개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에너지 가격이 정치적 민감 사안인 유럽에서 산업체 부담, 계약 위약금(테이크 오어 페이 조항), 전력 가격 급등 등 현실적 문제는 결코 작지 않다. 유럽 제조업체들이 미국산 LNG로 의존 대상을 전환하는 것 역시 “러시아 탈피 대신 미국 종속”이라는 새로운 딜레마를 안고 있다.

■ 글로벌 가스시장 속 유럽의 셈법

IEA에 따르면 유럽 최대 가스 공급국은 현재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 순이며, 향후 카타르·미국·캐나다의 신규 LNG 프로젝트가 2027년 전후 본격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LNG 공급 확대로 가격 안정화가 이루어진다면, EU의 러시아 가스 퇴출 전략도 보다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ICIS의 애널리스트 알렉스 프로리는 “LNG 시장은 여전히 타이트하다”며, 미국 경제 둔화 등 외부 변수에 따라 가스 수급도 언제든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고위 외교관은 “마지막 1마일이 가장 어렵고 가장 비싸다(The last mile is the most difficult and the most expensive)”고 말했다. 정치와 시장, 안보와 가격 사이에서 유럽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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