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부터 유럽으로 공급되고 있는 PNG 파이프라인/가스연맹 제공
러시아로부터 유럽으로 공급되고 있는 PNG 파이프라인/가스연맹 제공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단됐던 유럽행 러시아 가스 수출이 다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5월8일(현지시간), 미·러 고위 당국자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럽 공급 재개 가능성을 놓고 비공식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면서 에너지 공급 재개를 모스크바에 대한 주요 인센티브로 고려하고 있다는 외교 소식통의 전언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Steve Witkoff)와 러시아 국부펀드(RDIF)의 수장 키릴 드미트리예프(Kirill Dmitriev)는 지난 4월 1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측은 회동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복수의 소식통은 "미국이 유럽 내 러시아 가스의 향후 흐름에 대한 전략적 가시성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  유럽 탈러시아 가속 속 일부 국가는 여전히 의존

러시아 가스 수출 재개 논의는 유럽 내 미묘한 정치적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 현재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 위한 로드맵을 5월 6일 공식 발표하며, 2027년까지 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완전 종료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는 2022년 침공 이후 EU가 추진해온 '탈러시아 전략'의 연장선이다.

실제로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Gazprom)은 2024년 131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으며, EU 내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의 비중은 45%에서 19%로 급감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슬로바키아, 벨기에,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여전히 파이프라인 혹은 장기 LNG 계약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 중이다.

■ 미국 자본의 ‘에너지 카드’ 개입 가능성도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직접적으로 에너지 인프라에 ‘지분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는 정황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측은 노드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라인, 우크라이나 가스 중계 시스템, 심지어 가즈프롬의 지분 일부를 미국 기업이 보유하거나, 미국 자산운용사들이 중개역할을 맡는 방식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캐피털그룹(Capital Group) 등 주요 미국계 자산운용사들은 가즈프롬의 소액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미국이 직접적으로 러시아 에너지 시스템에 ‘전략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셈이다.

■ 유럽은 ‘완전 독립’, 미국은 ‘조건부 복귀’… 시각차는 여전

한편,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Dmitry Peskov)는 최근 프랑스 <르 푸앵(Le Point)>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가스 수입 조건이 바뀐다면 가즈프롬은 수출을 재개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이는 수출 인프라 통제권의 변경, 미국의 참여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여전히 단호하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이 유럽의 정치·안보적 독립성을 저해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시키는 자금원이 되어 왔다는 비판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가스 수출 논의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전환되기까지는 정치적 허들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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