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러시아산 가스 ‘탈출구’ 마련을 시도하고 있다. ‘포스 마주르(Force Majeure)’ 적용으로 위약금 없이 계약 해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지 편집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 ‘탈출구’ 마련을 시도하고 있다. ‘포스 마주르(Force Majeure)’ 적용으로 위약금 없이 계약 해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지 편집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유럽연합(EU)이 러시아와 체결한 장기 가스 계약을 위약금 없이 종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7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을 완전히 끊겠다는 로드맵의 일환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 기업들이 러시아와의 장기계약을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을 통해 종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조항이 적용되면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EU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의 단계적 이탈을 선언했고,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European Commission President Ursula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 역시 “러시아 가스의 단계적 철수는 필수적”이라고 재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 “탈러시아 선언했지만…2024년에도 수입 증가”

EU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500억㎥에 달했던 러시아 가스 수입은 2024년에는 520억㎥로 줄었지만, 러시아산 LNG는 오히려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러시아 가스 수입은 전년 대비 18% 증가했으며, 2025년 1월 우크라이나 경유 송출 종료 이후에도 터키 경유 ‘터크스트림(TurkStream)’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입이 계속되고 있다.

엠버는 “이러한 수입 증가 추세는 EU가 설정한 2027년 탈러시아 목표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국 LNG 의존 심화…트럼프 복귀 이후 확대 가능성

한편 미국은 현재 EU의 최대 LNG 공급국이며, 유럽과의 에너지 협력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LNG 수출을 외교 카드로 활용하고 있으며,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줄이는 과정에서 미국산 LNG 수입 확대는 불가피한 수순이 될 수 있다.

■ 독일·프랑스 내부선 “러시아 가스 재도입 논의”

하지만 유럽 내부에서는 러시아산 가스 재도입에 대한 암묵적 공감대도 존재한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앙지(Engie)의 디디에 홀로(Didier Holleaux) 부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산 가스 수입이 연간 600억~700억㎥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 화학공단 인프라로이나(InfraLeuna)의 크리스토프 귄터(Christof Guenther) 대표도 “러시아산 가스 재도입이 보조금보다 더 효과적인 가격 안정 수단”이라며, 다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주제”라고 덧붙였다.

■ 러시아 에너지 수출도 타격…미국발 변수 확대

한편, 미국의 관세 정책 여파로 러시아의 원유 수출도 흔들리고 있다.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러시아 항구를 통한 원유 수출은 하루 313만 배럴로, 2023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수출액은 주당 12억9000만 달러로 감소했다.

EU의 ‘무위약금 계약 해지’ 전략이 실제로 실행될 경우, 이는 에너지 시장의 지정학적 균형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급 안정성과 산업계 반발, 미국과의 가격 협상력 등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향후 논의의 향방은 5월 발표 예정인 로드맵의 세부 내용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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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러시아 #미 L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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