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신영균 기자] 미·중 무역 갈등과 관세 정책 등으로 미국이 한국 폐식용유를 공격적으로 대량 수입해 국내에서 수급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발 공급 쇼크로 폐식용유 가격은 1년 만에 50% 이상 급등했다. 미국에서는 현재 한국산 폐식용유를 연초 대비 리터당 900~1000원에서 1500원대로 수입가를 올려 사들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올해 들어 자국 내 SAF 및 바이오디젤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중국산 UCO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자 동남아를 비롯해 한국산 물량 사재기에 나섰다. 이에 따라 국내 중소 UCO 수집·가공업체들은 미국 현지 업체들에 밀려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발주사는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 물량 확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국내에서는 사모펀드(PEF)가 폐식용유 등 바이오원료 유통시장에 진출해 산업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폐식용유 발생과 처리 현황’을 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폐식용유는 53만6121톤이며 연평균 재활용량은 10만7000톤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발생량을 다시 추산하면 5년 동안 188만4370톤, 연평균으로는 37만6874톤에 달한다. 재활용량과 발생량이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는 민간사업자가 공동주택이나 식당 등에서 직접 수거하는 폐식용유가 발생량 통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서 집계한 자료를 토대로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해 폐식용유 수출량은 7만6123톤이며 금액은 7400만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수출량 3만3444톤 대비 무려 127.6% 증가한 양이다. 수출 금액도 2023년 3300백만 달러 대비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지난해 폐식용유 수입량은 9만948톤으로 전년도 6만7064톤 대비 35.6% 증가에 그쳤다.
사모펀드, 바이오 원료업계 진출 가속화
2027년 SAF 1% 혼합 의무화 차질 불가피
이렇듯 국내에서 바이오원료의 핵심인 폐식용유 확보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수입량 대비 수출량 증가세가 가팔라 국내 바이오 연료 산업계는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사모펀드의 에너지업계 진출 가속화 추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PEF가 '볼트 온(Bolt-On) 전략'을 통해 바이오원료 업체를 인수하며 기업 가치를 단기간에 끌어올린 후 매각하고 차익을 실현하는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
PEF의 바이오 원료 시장 공략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한 대경오앤티다. 스틱은 2017년 도축 부산물 가공업체인 대경오앤티의 지분 70%를 약 945억원에 인수했다.
스틱은 대경오앤티의 동물성 유지와 폐식용유 정제 기술을 활용하며 이 과정에서 생산된 기름을 바이오디젤 및 HVO(수소화 식물성 오일) 원료로 판매하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략은 적중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의 재생에너지 지침(RED) 강화로 바이오 연료 수요가 급증하자 수출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핀란드 정유사 네스테(Neste) 등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해 수출액은 2019년 25억원에서 2022년 587억원으로 3년 만에 23배 이상 폭증했다.
수출 확대를 위해 스틱은 '볼트온' 전략을 적극 구사해 지역별 중소 회수유 업체 6곳을 인수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그 결과 대경오앤티의 실적은 인수 첫해인 2017년 2316억원이던 매출이 2022년 6323억원으로 약 3배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65억원에서 817억원으로 13배 가까이 급증했다.
다만 이러한 성과는 결국 단기적인 투자 회수를 위한 발판이었다. 스틱은 인수 6년 만인 2023년 12월 대경오앤티 지분 전량을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TI)과 KDB산업은행-유진PE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당시 매각 가격은 약 4000억원대 초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틱은 투자 원금 대비 3.3배가 넘는 수익과 22.1%의 내부수익률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엑시트를 달성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PEF가 인수한 바이오원료 기업들이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내수 시장보다는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해주는 수출 시장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수출 지향 전략은 국내 원료 수급 불안정과 가격 급등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국내 바이오 연료 보급 확대 정책에도 걸림돌로 작용하며 결국 관련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 연료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과 국제민항기구(ICAO) 등에서 SAF 혼합 비율을 단계적으로 상향 중이며 국내에서는 2022년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가 바이오디젤 의무 혼합 비율을 2030년까지 기존 5%에서 8%로 상향하는 등 관련 정책이 강화돼 폐식용유를 비롯한 바이오원료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2022년 4월 팜유 수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팜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식물성 유지이며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이를 약 50% 정도 공급 중이었다.

올해 1월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무역부 장관령’을 통해 폐식용유와 팜유 부산물 등에 대한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했다. 이에 따라 수출업자는 해당 물품을 수출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수출 할당’을 받아야 한다. 이는 자국 내 바이오 원료 확보와 안정적 공급이 목적이다.
인도네시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정부 정책과 제도로 인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폐식용유와 팜유 부산물 수출량은 395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폐식용유 수출에 적용하던 13% 수출세 환급을 전면 폐지했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 재정부와 국가세무총국이 지난해 11월 15일 공식 발표한 내용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바이오 연료의 핵심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바이오디젤 산업의 내수 중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미국 농무부 해외 농업청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정책 시행 이후 중국의 폐식용유 수출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석유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체 수송 연료 수요에서 바이오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5.6%에서 2030년에는 6.4%로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까지 연간 2150억 리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항공을 비롯한 해양 바이오 연료가 관련 산업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향후 바이오 연료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폐식용유 등 바이오 원료 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당장 2027년 SAF 1% 혼합 의무화 방안은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항공유가 연간 약 700만톤임을 감안할 때 1%를 SAF로 대체할 경우 7만톤을 생산해야 한다. 이는 7만톤의 SAF 생산을 위해 폐식용유 70만톤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나 현재 국내에서 연간 수집할 수 있는 폐식용유는 약 30만톤에 불과하다.
그로 인해 바이오 원료 수급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환경부가 폐식용유를 ‘순환자원’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폐기물 규제가 대폭 완화돼 수집이나 유통이 쉬워지게 됐다. 그 결과 폐식용유 확보가 원활해질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조치만으로 바이오 원료 확보 대란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폐식용유 외에 동물성유지와 같은 다른 바이오 원료들도 추가로 ‘순환자원’으로 지정해야 한다. 또한 인도와 중국처럼 폐식용유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 정책 전환의 총체적 전략이 시급해 보인다.
최근 국내 과학계에서는 SAF 원료 개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탄소자원화 플랫폼 화합물 연구단’이 가축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바이오 가스’를 포집해 일산화탄소(CO) 및 수소(H2)를 결합한 합성가스를 만들고 이를 SAF로 생산하는 연구다. 이러한 연구개발에도 정부가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용어 설명
SAF(Sustainable Aviation Fuel) = 지속가능항공유. 식물성 기름, 폐식용유, 농업·임업 잔류물, 폐플라스틱 등 재생 가능한 바이오매스 또는 비화석 원료로 생산된 친환경 항공 연료.
UCO(Used Cooking Oil) = 폐식용유
PEF(Private Equity Fund) = 비공개 기업투자 펀드
볼트온(Bolt-on) = 동종업계 기업을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거나 전후방 사업체를 인수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 사모펀드가 주로 활용하는 전략 중 하나다.
수출 할당(Export Allocation) = 국가나 국제기구가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상품을 비롯해 전체 상품의 수출량 또는 수출 금액에 상한을 정해두고 이를 기업·산업·국가별로 배분하는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