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글로벌 정유 산업이 탈탄소 전환의 구조적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에너지 시장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420개 정유기업 가운데 약 101개사(24%), 하루 총 1840만 배럴(bbl/d) 규모의 정제 설비가 2035년까지 폐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정유사 대부분 시장 변화에 민감하고, 추가 수익 창출 여력이 낮은 민간 소유 정유시설로, 특히 탄소 비용 증가와 기술 전환에 대한 대응력이 낮은 곳들이 주요 폐쇄 후보로 지목됐다.
■ “정유업의 사양화” 현실로… 고비용·저효율 정유소 도태 가속
이번 분석은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탈탄소에 실패한 정유소는 도태된다’는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비용 증가, 연료 수요 감소, 신규 연료 전환 압박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유업의 생존 요건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정의되고 있는 중이다.
하루 1840만 배럴의 정제능력은 전 세계 석유 정제 능력의 약 20%에 해당하며, 이에 따른 시장 충격은 단지 해당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 연료 수급 안정성, 석유계열 화학 원료 공급망에도 구조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다.
■ 유럽·캐나다 중심 탄소세 급등… 수익성 역전 본격화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는 2030년대 중반까지 현재 세계 평균 대비 최대 3배 수준의 탄소세(Carbon Tax) 인상이 예상된다. 정유소의 운영비용에서 정제 공정 중 배출되는 CO₂에 대한 직접 부담이 수익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된다는 의미다.
특히 고유황 원유를 처리하거나, 탈황·수소화 등 부가설비가 부족한 노후 정유사의 경우, 추가 설비투자 없이는 배출권 구매 비용만으로도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부 유럽 민간 정유소는 이미 정제마진 하락과 규제 비용 증가로 인한 운영 중단 혹은 매각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유사의 ‘존속 조건’은 수소·바이오·CCUS 연계 능력
전문가들은 “2030년 이후 정유사는 단순히 연료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탄소관리 및 저탄소 에너지 공급의 플랫폼이 되어야 살아남는다”고 강조한다. 즉, 생존 조건은 △바이오연료 전환 △청정수소 공급과 통합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설비 연계 등 에너지 복합단지로의 진화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정유사 단위의 기술 전환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유인과 배출권 가격 예측 가능성 확보, 장기 투자자 기반 구축이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