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내기술로 완공된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2007년 국내기술로 완공된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투데이에너지 안후중 기자]

대한민국은 에너지 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현실 속에서 미래 에너지 안보 확보를 국가적 과제로 삼고,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에너지 개발에 장기적인 투자를 지속해왔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을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의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 KSTAR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핵융합 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이제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의 핵심 파트너를 넘어 자체적인 핵융합 실증로(K-DEMO) 건설과 2050년대 상용화를 향한 담대한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편집자 주

미래 청정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핵융합 에너지 개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연구개발 노력이 세계적인 성과로 이어지며 ‘인공태양’ 시대를 향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을 중심으로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 KSTAR운영,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 참여, 핵융합 실증로(DEMO) 핵심 기술 개발 등 다각적인 노력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 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핵융합 에너지 확보는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에너지 자립 향한 씨앗, 1995년 국가계획으로 발아

한국 핵융합 연구의 공식적인 출발은 1995년 ‘국가핵융합연구개발기본계획’ 확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과 국제 연구 동향에 발맞춰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이듬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내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이 출범하며 KSTAR 프로젝트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9년 서울대학교가 국내 최초 토카막 SNUT-79를 개발, 운영하며 쌓은 기초 연구 역량이 밑거름이 되었다.

2002년 핵융합특수실험동 준공으로 물리적 기반을 다졌고, 2003년에는 ITER 프로젝트에 공식 가입하며 국제 협력의 문을 열었다. 이는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난제를 국제 공동 연구로 풀어가려는 전략적 결정이었다. 2004년, 마침내 KSTAR 주장치 조립 및 설치가 시작되었다.

KSTAR 건설과 운영, 세계를 놀라게 하다

연구 조직은 꾸준히 성장했다. 2005년 핵융합연구센터로 확대 개편되었고, 2006년에는 ‘핵융합에너지개발진흥법’ 제정으로 안정적인 연구개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같은 해 ITER 공동 이행 협정에 서명하며 국제 협력을 공고히 했다.

2007년,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승격과 함께 KSTAR가 완공되었다. KSTAR는 세계 최초 로 첨단 초전도 재료인 Nb₃Sn을 전면 사용한 토카막 장치로, 기술적 도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음을 알렸다. 마침내 2008년 7월, KSTAR는 첫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하며 성공적인 시운전을 알렸다.

KSTAR 운영은 곧바로 세계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2010년 세계 최초로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모드(H-mode) 달성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핵융합 플라즈마의 주요 불안정 현상인 경계면 불안정성(ELM) 억제에 세계 최초로 성공하며 플라즈마 제어 기술력을 입증했다.

핵융합 상용화의 핵심 조건인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은 2018년 국내 최초로 달성되었다. 이후 KSTAR는 1억도 플라즈마 유지 시간을 2020년 20초, 2021년 30초, 그리고 2024년 4월 기준 48초까지 늘리며 연이어 세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는 초고온 플라즈마 제어 기술의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0년 11월, 국가핵융합연구소는 독립 법인인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으로 승격, 출범했다. 이는 기초 연구 중심에서 실증 및 상용화 기술 개발로 무게 중심을 옮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토카막 핵융합장치 이미지
토카막 핵융합장치 이미지

KSTAR 넘어, 플라즈마 응용과 산업 생태계 구축

핵융합 연구는 KSTAR 외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2012년 군산에 설립된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는 핵융합 파생 플라즈마 기술을 재료, 환경, 농식품, 바이오 등 다양한 산업에 응용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핵융합 연구에서 축적된 기술은 반도체 공정,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 의료 살균 등 실용적인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KSTAR 건설 과정에서 확보된 대형 초고진공 기술이 LNG 운반선 효율 향상에, 대용량 전원 장치 기술이 제철소 집진 시설 국산화에 기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대학 역시 초기 연구부터 인력 양성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KFE는 대학과 공동 연구, KSTAR 공동 실험, 연계 대학원 과정 운영 등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 연구팀이 핵융합 난제인 ‘폭주 전자’ 발생 원리를 규명하는 등 학계의 기여는 계속되고 있다.

핵융합 연구는 거대 과학 프로젝트로서 산업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KSTAR 건설에는 현대중공업, KAT, 두산중공업, 삼성, 포스코, 한국항공우주산업 등 다수 기업이 참여했으며, 이는 ITER 프로젝트로 이어져 한국 조달 품목 대부분이 국내 산업체를 통해 제작·납품되고 있다. KFE는 핵융합가속기기술진흥협회 출범 지원 등을 통해 산업생태계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2050년대 핵융합 발전 실증 목표, KDEMO 로드맵

정부는 ‘핵융합에너지 개발진흥법’에 따라 5년 단위의 ‘핵융합에너지 개발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제4차 기본계획(2022~2026년)은 KSTAR 실험 목표 달성, 핵융합 실증로(DEMO) 건설에 필요한 8대 핵심기술 개발 가속화, ITER 사업 완수, K-DEMO 건설 장기 로드맵 구체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8대 핵심기술은 △초고온·장시간·고밀도 노심 플라즈마 기술 △삼중수소 증식 및 전력생산을 위한 증식블랑켓 기술 △극한 환경 내구성 고유 소재 기술 △연료주기 기술 △디버터 기술 △플라즈마 가열 및 전류구동 장치 기술 △고자장 초전도 자석 기술 △안전·인허가 관련 기술이다.

대한민국의 최종 목표는 자체 핵융합 실증로인 K-DEMO 건설 및 운영이다. K-DEMO는 핵융합 반응으로 실제 전기를 생산하여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경제성을 입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설 결정은 ITER의 성공적인 운전 결과를 확인한 후인 2035년 이후로 예상되며, 2050년대 핵융합 발전 실증을 장기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현재는 KFE를 중심으로 8대 핵심기술 개발과 연계하여 K-DEMO 개념 설계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가상 K-DEMO’ 구축을 통해 설계 최적화와 위험 요소 감소를 추진하고 있다.

핵융합연구개발 파급 기술 분야
핵융합연구개발 파급 기술 분야

ITER, 국제 협력의 중심에서 한국의 위상

ITER는 7개 회원국이 프랑스에 공동 건설 중인 세계 최대 핵융합 실험 장치다. 투입 에너지보다 10배 이상 에너지를 생산하는 연소 플라즈마 구현과 핵심공학 기술 실증을 목표로 한다. 한국은 전체 건설비의 약 9.09%를 분담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로 9개 핵심 부품 및 시스템을 현물로 납품한다.

한국은 TF 초전도 도체, 진공용기 본체, 열차폐체, 조립 장비 등 주요 품목 조달을 성공적으로, 때로는 참여국 중 가장 먼저 완료하며 뛰어난 기술력과 사업 관리 능력을 입증했다. 이 외에도 진공용기 포트, 블랑켓 차폐블록, 삼중수소 저장 및 공급 시스템, 전원공급장치, 일부 진단 장치 조달을 책임지고 있다. 자체 조달 품목 외에도 ITER 국제기구 및 타 회원국으로부터 R&D 용역, 부품제작 등 추가 사업을 수주하며 국제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KSTAR는 ITER 운전 기술 사전 검증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미국, EU, 일본 등 주요국과의 양자 협력 및 인력 교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은 핵융합 연구개발 분야에서 세계 선도 그룹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KSTAR의 성과와 ITER에서의 뛰어난 조달 실적은 국제 핵융합 커뮤니티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는 향후 K-DEMO 추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아있는 도전 과제와 미래

핵융합 상용화까지는 플라즈마 물리, 재료 과학, 핵공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남아있다. 고성능 플라즈마의 장시간 안정적 유지, 플라즈마 붕괴 예측 및 완화, 디버터의 막대한 열·입자 부하 처리, 고에너지 중성자를 견디는 혁신적인 구조 재료 개발, 플라즈마-재료 상호작용 제어, 삼중수소 자급자족 실증 및 연료주기 기술 확립, 원격 유지보수 기술, 효율적인 열 추출 및 전력 변환 기술 등이 주요 과제다.

대한민국은 KSTAR 활용 극대화, ITER 사업 적극 참여, 8대 핵심기술 R&D 집중, 시뮬레이션 역량 강화, 국제 협력 강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이러한 난제들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핵융합 에너지 실현이라는 목표는 험난하지만, 한국은 체계적인 로드맵과 KSTAR 운영 경험, 우수한 산업 기반, 활발한 국제 협력을 바탕으로 도전을 이어갈 충분한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핵융합 에너지 실현은 대한민국의 에너지 자립을 넘어 전 지구적 에너지 및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핵융합실험동/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핵융합실험동/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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