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이재명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천명한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 조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RE100 산단 조성을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과 특별법 제정 논의를 본격화했다.
문신학 산업부 1차관 주재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는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8개 부처 실국장급이 참석해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인프라 확충과 규제 완화, 입지 경쟁력 확보 등 산단 성공 요건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문 차관은 “RE100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수출기업의 생존 요건이 되고 있다”며 “이제는 규제가 아니라 기회로 받아들여야 하며, 정부는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조속한 실행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RE100 산단은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공급받는 전용 산업단지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RE100 이행을 요구하는 애플, BMW 등 다국적 기업의 니즈를 반영한 정책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지역 균형 발전과 수출 제조업 투자 유치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TF 격주 운영...이재명 식 ‘쾌도난마’
산업부는 TF를 격주로 운영해 연내에 RE100 산단 기본 계획과 특별법 제정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번 TF는 앞서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RE100 산단이 국가 핵심과제로 공식화된 이후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정부는 특히 ‘규제를 원칙적으로 배제한다’는 파격적인 기업 친화 정책을 내세우며 전기요금 인하, 정주 여건 개선, 교육 인프라 확충 등 다양한 당근책을 예고했다.
관계부처는 첨단 제조업체 유치를 위해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확대와 입지 규제 완화 등도 적극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의 유치 경쟁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새만금 국가산단이 “재정 투입 없이도 RE100 산단을 곧바로 추진할 수 있는 최적지”라며 강하게 어필했고, 김제시와 부안군도 인근 수상태양광과 해상풍력 인프라를 내세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전남도는 23GW 규모의 재생에너지 공급계획을 발표하며 해남·무안·신안 일대를 벨트형 RE100 산단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울산은 해양플랜트 기반의 부유식 해상풍력 기술을 앞세워 동참하는 등 후보지 선정을 앞둔 물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전 부채·재정부담...제도 설계 신중해야
그러나 RE100 산단의 성공적 조성과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전력 가격의 현실과 한국전력공사의 재무건전성이 가장 큰 리스크로 지목된다.
현재 태양광 전력의 평균 구매 단가는 1kWh당 130.5원, 풍력은 123.6원으로, 원자력(80원)의 약 1.5배에 달한다. 정부가 RE100 산단 입주기업에 전기요금 인하 혜택을 제공할 경우, 이 차액은 결국 한전이 떠안게 되는 구조다.
올 3월 말 기준 한전의 부채는 206조8020억원, 누적 적자는 3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간신히 흑자(3조2000억원) 전환에 성공했고, 올 1분기에도 1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확대와 산단 입주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본격화될 경우 재무 안정성이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상분쟁 비화 가능성도 우려
더욱이 정부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기업들에 규제 면제와 다양한 세제 혜택을 약속하고 있지만, 이 같은 혜택이 통상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철강업계가 이미 한국 기업의 산업용 전기요금 할인에 대해 ‘정부 보조금’ 의혹을 제기한 전례가 있어, RE100 산단의 전기료 인하 방안은 향후 국제무역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또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와 지역 간 송전망 격차도 풀어야 할 과제다. 대부분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지방에 몰려 있는 반면,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에 따라 송전망 확충이 불가피하지만 이 또한 한전의 재무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전기요금 혜택분이 한전 부채로 전가되는 구조로 설계해선 안 된다”며 “전력산업 기반 기금 일부로 지원하거나, 기업 유치를 통해 늘어난 지방 세수를 활용해 해당 지자체가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 방식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 역시 현실적인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RE100 산단이 지역에 텅 빈 국가산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주요 기업과의 사전 교감이 중요하다”며 “에너지 자급률에 따라 수도권과 지역 간 전기요금을 차등화해 지방 이전을 유도하는 구조적 유인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오는 하반기 중 시범 대상지를 선정하고 제도적 인센티브를 구체화할 예정이다. RE100 산단이 에너지 전환과 지역 균형 발전의 신모델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재정부담의 뇌관이 될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실행의 무게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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