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재로 인해 색이 변해버린 발전소 인근 바다./ 기후솔루션 제공 
석탄재로 인해 색이 변해버린 발전소 인근 바다./ 기후솔루션 제공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철강 산업의 녹색 전환이 본격적인 정책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저탄소 철강산업이 수요 부재로 인한 ‘전환 정체’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정부 차원의 공공조달 기준 부재가 구조 전환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기후솔루션이 7월28일 발표한 보고서 「저탄소 철강의 시작, 공공조달로부터」는 한일 양국의 녹색 철강 공공조달 정책을 비교하며, 한국이 ‘저탄소 철강 정의조차 없는 정책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일본은 공공조달 기준을 녹색 전환 촉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며 시장 기반을 확충하고 있다.

■ 공급은 준비됐지만, 수요는 없다…정의조차 모호한 ‘저탄소 철강’

철강은 국내 제조업 온실가스 배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대표 탄소다배출 산업이다.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전환 등 저탄소 공정 기술을 도입 중이나, 생산비 상승과 초기 투자비용 부담으로 인해 수요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아직도 ‘저탄소 철강’에 대한 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탄소 배출량에 따른 인증 체계나 조달 기준도 부재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기술 투자와 제품 전환은 시장성과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공공 인프라에 대량으로 쓰이는 철강재는 국가가 조달을 통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대표 품목이지만, 현재 조달청의 녹색제품 지정 기준에는 철강 품목이 아예 빠져 있고, 탄소 배출량 역시 반영되지 않고 있다.

■ 일본은 이미 기준-수요-보급 ‘정책 선순환’ 구축…공공조달이 녹색 전환 견인

반면 일본은 2025년 개정된 ‘그린구매법’에 따라 철강을 지정조달 품목으로 포함하고, 민관 합의를 통해 ‘그린강재’ 정의와 기준을 수립했다. 수소환원제철 기반 제품에는 우선 구매 혜택을 부여하는 등 정부의 명확한 수요 시그널이 기술 개발과 보급 확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도쿄제철의 저탄소 철강 브랜드 ‘호보제로’는 실제 공공사업 납품을 통해 민간 수요로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향후 대형 인프라 사업에 그린강재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 한국, ‘정의-기준-조달’ 모두 미흡…정부 컨트롤타워 시급

기후솔루션 보고서는 한국이 이 같은 정책 선순환을 구축하기 위해 △조달청의 녹색제품 품목 확대 △저탄소 철강 정의 및 기준 수립 △환경부·조달청·국토부 간 연계 기준 정비 △민관 협의체 구성 등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증-조달-설계 기준이 부처별로 분절되어 있는 점은 가장 큰 제도 단절 요인으로 꼽힌다. 동일 제품에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면서 실제 저탄소 기술을 적용한 기업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  글로벌 연계도 필요…8월 CEM 계기 ‘IDDI 가입’ 제안

보고서는 한국이 오는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청정에너지장관회의(CEM)’를 계기로, 국제 이니셔티브인 ‘산업 심층 탈탄소화 이니셔티브(IDDI)’에 가입할 것을 제안했다. IDDI는 철강·시멘트 등 중후장대 산업의 글로벌 조달기준을 조율하는 기구로, 한국이 조기 가입 시 국제 규범 형성과 공공조달 연계를 선도할 수 있다.

IDDI 참여는 저탄소 철강의 수출경쟁력 확보와도 직결된다. 공공조달 기준이 향후 주요 수입국의 통상 장벽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용어 설명 : 

· 그린구매법(그린구입법, Act on Promotion of Procurement of Eco-Friendly Goods and Services by the State and Other Entities, Japan's Green Purchasing Law) = 일본 정부 및 공공기관이 환경 부담을 줄이는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조달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한 제도다. 이 법은 2000년 제정된 이후 꾸준히 개정되어 왔으며, 2025년 개정판에서는 ‘철강’을 지정조달 품목에 공식 포함하고, ‘그린강재’의 정의와 기준을 민관 합의를 통해 마련했다. 특히, 수소환원제철 등 탄소 저감 공정을 거친 철강 제품에는 정부가 우선 구매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기술 개발과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는 정책 선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일본 정부가 공공조달을 통해 탈탄소 산업 생태계와 녹색시장 확대를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실질적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 청정에너지장관회의(CEM, Clean Energy Ministerial) = 전 세계 에너지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청정에너지 기술 발전을 논의하고, 관련 정책과 모범 사례를 공유하며, 글로벌 청정에너지 경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개최되는 고위급 국제 포럼이다. 이 회의에서는 각국 정부와 산업계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에너지 전환과 온실가스 감축, 혁신 기술 확산을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실제 국제 협력 사업과 이니셔티브를 발굴한다.

· 산업 심층 탈탄소화 이니셔티브(IDDI, Industrial Deep Decarbonisation Initiative) =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주관하는 국제 이니셔티브로, 철강과 시멘트 같은 중후장대 산업의 글로벌 저탄소 조달 기준을 만들고 각국의 제도 통합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주요 회원국들은 저탄소 철강·시멘트의 국제 기준 마련, 공공조달 시장 확대, 혁신기술 상용화를 위해 협력하며, IDDI 가입국은 국제 규범 형성과 글로벌 수출 경쟁력 제고에 있어 주도적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