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한국전력공사(한전)가 3조원대 영업흑자를 기록하며 반등의 신호탄을 쏜 듯 보였지만, 이는 착시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화석연료 수입 의존과 산업용 전력 수요 위축, 해외채권 시장에서의 신뢰 하락 등 복합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현재 구조로는 '회복'이 아닌 '유지'조차 불가능하다는 경고다.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법인인 기후솔루션이 7일 발표한 보고서 ‘탈한전 시대 한국전력의 과제: 2025년 부채위험 진단’에 따르면, 한전의 지난해 실적 개선은 국제 연료 가격 하락에 따른 일시적 효과일 뿐 구조적인 재무 건전성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
실제 2025년 기준 부채는 75조원, 부채비율은 자본금의 6배에 달하는 619%로 흑자 규모와 맞먹는 연 이자 부담(3조원)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보고서는 “한전이 지난 3년간 48조원의 영업손실을 떠안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폭등한 석탄·LNG 가격은 한전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빚 돌려막기’ 식 재정 운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유동성 문제가 아닌 ‘체질의 한계’라는 분석이다.

◇‘탈한전’ 흐름 산업계 전반 확산
한전의 가장 큰 수익 기반이던 산업용 전기 수요마저 줄어들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산업용 전력 비중은 처음으로 50% 아래(49.6%)로 떨어졌다. 이는 RE100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PPA(전력구매계약) 확대로 이어지며, 사실상 ‘탈한전’ 흐름이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솔루션은 “기업들의 ‘탈한전’ 흐름이 지속될 경우 한전의 산업부문 마진은 2024년 9.6조 원에서 2030년 8조 원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한전은 가장 수익성 있는 시장에서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전력 수요 위축과 시장 이탈, 여기에 탄소중립 트렌드까지 겹치며 한전은 매출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더는 예전처럼 단순한 요금 인상이나 정부 보조로는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매년 20조원 규모 채권 만기 돌아와
가장 심각한 경고는 2027년 이후다. 현재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의 5배까지 허용된 한시적 사채발행한도 덕에 채권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한도는 2027년 말부터 기존 수준인 2배로 복원된다. 이는 법적 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하며, 한전의 주된 자금 조달 수단 자체가 막힐 수 있다.
실제 2025년 2분기 기준 한전의 채권 잔액은 75조원에 달하며, 매년 20조원 규모의 채권이 만기를 맞는다. 이는 사실상 빚으로 빚을 갚는 구조다.
게다가 녹색채권의 그린워싱 논란, 해외 공시 누락 등으로 국제 채권 시장에서의 신뢰마저 잃고 있어 재발행조차 순탄치 않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사채 발행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부채의 근본 원인인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는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며 “총괄원가보상제도 폐지, 좌초자산 처리, 발전 공기업 개편 등 정부의 전략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 고동현 팀장은 “한국전력의 화석연료 의존에 따른 부채위험이 만성화되고 있다”며 “새 정부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한전채 블랙홀과 같은 금융위기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가희 전력시장계통팀장 역시 “화력 중심 발전 자회사에 총괄원가를 보전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한전이 독립적인 송배전망 사업자로 전환하도록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흑자’라는 단기 성과 뒤에 가려진 구조적 리스크를 정부가 방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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