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유난히 길었던 겨울 한파가 춘삼월의 끝을 부여잡고 버틸 심산이다. 동절기 ‘난방비 폭탄’을 다음 달까지 떠안아야 할 ‘난방 서민’들의 한숨에 땅이 꺼진다. 숨돌리기 무섭게 유례없었던 지난여름의 냉방 전기요금 트라우마가 다시 떠오른다.
겨울철 공동주택 ‘난방비 0원’ 논란이 올해도 어김없이 이슈로 부상했다. 2014년 배우 김부선 씨의 ‘난방열사’ 사태를 기점으로 해마다 재조명되며 피해자들이 대거 발생한 가운데, 이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달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논란이 반복되는 가장 큰 원인은 난방 계량기 관리와 검침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등이 지속되는 데 있다. 이런 문제의 중심에 열 에너지를 공급하는 집단에너지사업자들이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넉 달 동안 1개월 치 이상의 난방비를 한 푼도 안 낸 공동주택이 17만7000여 세대다. 이 가운데 12%가량인 2만1500여 세대는 계량기 고장으로 인해 난방비가 부과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기 수원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선 4년간 700여 세대에 난방비가 부과되지 않은 게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커졌다. 이들 세대가 지불했어야 할 7억여원의 난방비는 결국 다른 세대에 전가, 분담·납부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단순히 세대 과실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관리사무소 업무의 한계
현재 지역난방을 이용하는 공동주택 난방비는 열 공급자가 단지 전체의 열 사용량을 관리사무소에 청구하고 관리사무실은 각 세대 사용량에 맞춰 이를 분배하는 방식으로 부과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세대 내 열량계다.
하지만 열량계 노후화와 관리사무소 직원의 검침 실수, 입주민의 자가 검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 등은 난방비 부과 과정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난방 계량기 관리와 유지·보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현재 대부분의 공동주택 관리규약은 이를 관리사무소에 부담시키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관리사무소가 이 업무를 수행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적지 않은 계량기가 세대 내부에 설치돼 있고, 관리사무소는 이를 점검할 권한이 없다. 또 고장이 발생해도 입주민이 신고하지 않으면 관리사무소는 고장 존재를 알 방법이 없다. 이는 계량기를 고의로 훼손해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해석이기도 하다. 게다가 관리사무소엔 계량기 검침 장비도 없어 정상 작동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열공급 사업자의 한계
이런 상황에서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은 계량기 유지·보수와 검침 관리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세대별 검침 부과는 관리사무소 업무’라며 관리사무소와 입주민들이 겪고 있는 불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난방비 문제는 결국 관리사무소와 입주민들 간의 분쟁으로 비화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선 개별 아파트 차원의 노력보다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난방 계량기도 전기·수도·가스 계량기처럼 공급자가 유지·보수를 책임지는 방향으로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난방비 청구 주체인 지역난방 공급 기업이 정기적으로 계량기를 교체하고 검침을 직접 관리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단 얘기다.
또 스마트계량기 도입을 확대해 검침 오류를 줄이는 것도 중요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스마트계량기를 통해 원격으로 정확한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다면, 입주민들의 자가 검침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져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정부와 지자체가 스마트계량기 교체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특히 노후 아파트에 우선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계량기 조작이나 불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도 필요하단 입장이다.
전기·수도·가스 계량기 조작은 명백한 불법 행위로 처벌 대상이지만, 난방 계량기 조작에 대한 처벌 기준은 현재 없는 상태다. 이에 대한 처벌 조항을 마련하고 관리사무소가 의심 사례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열 공급 사업자가 난방 계량기 관리와 유지보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스마트계량기 도입을 확대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을 통해 난방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입주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고 공정하고 투명한 요금 부과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뿔난 오산시 주민들
이런 가운데, 경기도 오산시의 집단에너지사업자인 민간기업 DS파워가 과도한 난방요금을 부과해 거센 주민 반발을 사고 있다.
해당 공동주택 입주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과 요금 부과’ 논란은 지역난방 공급사가 타 지자체보다 월등히 비싼 열 요금 단가를 책정했기 때문. DS파워는 이 지역에서 공기업인 난방공사 요금보다 평균 9% 높은 요금(1Mcal당 122.43원)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인근 지자체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오산시민들은 경기도 내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1Mcal당 10.11원, 가구당 연평균 5만∼6만원의 난방요금을 추가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난이 제공하는 난방요금(1Mcal당 112.32원)과 민간기업인 DS파워가 제공하는 요금 차이에서 비롯된다. 사실상 도내 민간기업 대부분이 한난과 동일 요금을 적용하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한난보다 요금이 높은 일부 민간기업도 한난 요금보다 1.7% 높은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DS파워는 상대적으로 과도한 요금을 부과하고 있어 주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
2016년부터 오산지역 5만여 가구에 난방을 공급해 오고 있는 DS파워에 대한 주민 민원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와 관련, 전도현 오산시의원은 지난 2012년부터 “열 요금 인상에 대한 민원이 지속돼왔다”며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오산시장은 최근 이례적으로 민간기업인 DS파워를 방문, 난방요금 인하 필요성을 설명하며 요금 완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DS파워는 투자비 회수와 열 공급 가구 수 등의 제반 여건을 이유로 요금 인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발전소를 7만5000세대 규모의 열 생산 능력을 갖춰 준공·운영해왔는데, 현재까지 5만 세대에도 미치지 못해 요금 인하 조정은 사실상 여렵다는 입장이다. 그나마도 법적 테두리 내에서 10%까지 부과할 수 있는 요금을 1% 낮춰 부과했다는 설명이다.

설상가상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역난방 열 요금 체계에 ‘하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지역별 요금 편차가 더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부는 최근 지역난방 업계와 비공개 회의를 갖고 열요금에 하한선(90%)을 두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많게는 지역별로 최대 20%까지 난방비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임용훈 숙명여자대학교 기계시스템학과 교수는 ”인접한 옆 동네인데, 공급 지역이 달라서 20% 더 비싼 요금을 낸다면 싼 지역으로 붙여달라는 민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입주민들 간에)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 반발이 심할 것“이라 우려했다.
임 교수는 ”여차하면 지역 고시제(정부의 열 요금 고시 개정)에 큰 타격이 있을 수 있다”며 “파급력이 클 텐데,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난방비 0원’ 논란과 관련해선 난방공사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난 역시 제도적 미비점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난은 “국토교통부에서 제도와 부과 기준을 마련해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리사무소가 세대별 계량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관리자 기술교육 등의 업무를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 문제는 정부가 나서 문제를 보완하고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겨울철 난방비 급등으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 주민들의 분노가 확산되면서 이번 논란이 ‘제2의 난방열사’ 사태를 촉발하는 건 아닌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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