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정부가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혁신을 내세운 대규모 기술개발에 본격 착수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에너지 수요관리 핵심기술개발사업’의 2025년도 신규과제 수행기관을 확정, 오는 2028년까지 총 1525억원 규모의 국비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요관리 기반 기술개발 5개, 효율혁신 기술개발 6개 등 총 11개 과제를 선정해 각각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디지털화, 전력 피크 절감, 전기화 전환, 저탄소 고효율화를 위한 기술혁신을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왜 이 과제를 선정했는가’에 대한 배경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비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국가 R&D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선정 타당성이나 경제성, 기대 파급효과에 대한 구체적 근거나 수치 기반 분석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이번에 선정된 과제는 △차세대 전기형 공동주택 제로에너지화 △초고효율 히트펌프 △이차전지 초저습 드라이룸 △반도체 진공시스템 효율화 △전기차 충전기 대기전력 관리 기술 등 산업 전반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한 내용이 중심이다.
그러나 기술의 실현 가능성과 시장 적용성, 국내 산업과 소비자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량적 분석은 부재하다. 예산 규모로만 보면 개별 과제당 110억~150억원의 국비가 집중된다.
‘브이산업’은 공동주택 전기화 실증에 145억원, ‘피라인 오터스’는 전기차 충전기 기술로 140억원, ‘신성엔지니어링’과 ‘신성이엔지’는 각각 반도체·이차전지 클린룸 효율화 기술로 150억원씩을 확보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일부 중견·중소기업도 포함돼 민간 기술역량 강화 목적도 담고 있지만, 기준 없는 예산 배정과정은 의구심을 자아낸다.
에너지 기술은 국가적 중장기 전략과 직결되며, 실증을 거쳐 상용화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투자가 요구된다.
그만큼 국민 세금으로 진행되는 R&D 사업은 명확한 투자 근거와 성과 예측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산업부는 이번 보도자료 발표에서 “선정 배경”은 물론이고, “시장 규모 추정”이나 “기술 실현 시 기대효과”에 대한 수치 기반 설명을 단 한 줄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산업계 안팎에선 “기술 타당성보다 정치적 균형, 이해관계자 안배가 우선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증 없는 실증 가능성 높아”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제어기술과 온디바이스 AI 같은 키워드를 나열했을 뿐, 실제 해당 기술이 국내 여건에서 얼마나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검증 없는 실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제7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2025~2029)’ 수립 과정에서 선제적 R&D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단순한 청사진에 그칠 경우 이번처럼 정책의 연속성과 실효성은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국비 수천억이 투입되는 연구개발에 대해 정당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향후 사업 진행과정에서 철저한 예산 집행 관리, 경제성 평가 및 기술 사업화 성과공개가 수반돼야 한다.
‘기술개발을 위한 기술개발’에 머무를 경우 그 책임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