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그리스가 유럽 에너지 지정학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불가리아에서 체결된 다자간 합의를 통해, 그리스에서 출발하는 ‘수직형 가스회랑(Vertical Gas Corridor)’ 건설이 본격화됐다. 이 프로젝트는 그리스산 또는 제3국산 천연가스를 남부에서 북부 유럽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에너지 수송망으로, 에너지 안보와 공급 다변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적 기반시설로 평가받는다.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연간 200~25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그리스에서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로 수송하며, 동쪽으로는 몰도바와 우크라이나까지 연결된다. 이는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데 중요한 대안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리비소사+알렉산드루폴리 FSRU’가 허브 역할
회랑의 출발점은 그리스의 기존 리비소사(Revithoussa) LNG 터미널과 최근 상업 가동에 들어간 알렉산드루폴리(Alexandroupolis) 부유식 저장·재기화 설비(FSRU)다. 이들 터미널은 미국산 LNG를 포함한 다양한 공급원의 가스를 흡수해 동유럽으로 분산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 기반을 제공한다.
초기 단계에서 그리스–불가리아 간 수송능력은 연간 23억㎥에서 36억㎥로 50% 이상 확대되며, 이후 루마니아까지는 최대 100억㎥로 증설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동지중해 지역(예: 이스라엘, 이집트) 가스도 해당 회랑을 통해 유입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 수소·재생가스 수송도 고려한 미래형 인프라
수직형 가스회랑은 단순히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수소 및 재생가스 등 탈탄소 연료의 유럽 내 이동 통로로 확장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EU의 탄소중립 전환 전략과도 정합성이 높다.
다만, 프로젝트가 마주한 과제도 있다. 일부 통과국가(특히 루마니아)의 높은 송전 요금은 상업적 매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몰도바, 우크라이나의 송전망 운영사(TSO)들이 공동 참여한 이번 협정은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지정학의 교차로가 된 그리스… LNG+TSO 결합형 허브 구축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에너지 기반시설을 넘어, 그리스를 남북 및 동서 에너지 교차로로 부상시키는 중대 전환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유럽의 구조적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주요 대안 중 하나로, 이 회랑은 대체 수입원 확보와 함께 에너지 가격 안정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안보와 전환기를 동시에 추구하는 유럽에게 있어, 수직형 가스회랑은 그리스를 단순한 수송국이 아닌 ‘지정학적 에너지 허브’로 전환시키는 핵심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