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테슬라 홈페이지
사진 : 테슬라 홈페이지

[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전기자동차(EV) 판매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급성장하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시장으로 사업 축을 이동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 부문 매출 감소를 상쇄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평가된다.

전기차에서 에너지저장으로 전략 전환

한때 전기차 배터리 공급에 집중했던 제조업체들이 전력회사, 재생에너지 개발업체, AI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주요 고객층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5년 전 과도하게 낙관적이었던 전기차 시장 전망으로 인해 미국 남부와 중서부에 건설된 수십억 달러 규모 공장들의 가동률 저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켄지에 따르면, 미국의 에너지저장 배터리 설치량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배 이상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3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AI 데이터센터 확산, 제조업 부활, 광범위한 전기화로 인해 15년간 정체됐던 미국 전력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LG 배터리 사업부 임원 박재홍은 "ESS는 오랫동안 우리 조직에서 미운 오리 새끼였다"며 "하지만 이제 핵심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슬라, 에너지저장으로 전기차 손실 상쇄

테슬라는 이러한 전환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태양광 패널을 포함한 에너지저장 부문 매출이 작년 67% 증가한 40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기차 판매 감소분 60억 달러를 상당 부분 상쇄했다. 테슬라의 주요 고객에는 유틸리티업체 인터섹트와 일론 머스크의 xAI가 포함되며, xAI는 2024년 테슬라 메가팩 제품을 1억 9,100만 달러에 구매했다.

제너럴모터스(GM)도 재활용 스타트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와 대용량 저장시스템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레드우드 창립자 JB 스트라우벨은 "지금은 모든 에너지원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갈증이 있다"고 말했다.

LG 배터리는 원래 전기차 전용으로 건설된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을 14억 달러를 투입해 확장, 미국 최초의 고정형 배터리 저장 시설로 전환했다. 이로써 미국 에너지저장 시장 진출을 1년 앞당길 수 있었다.

 중국 기술 우위 속 미국의 대응 전략

시장조사업체 CRU의 배터리 전문가 샘 애드햄은 중국이 수십 년간 고정형 배터리용 저가 화학 기술을 발전시켜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배터리가 여전히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기존 시설 최대 활용으로 대응하고 있다. LG는 올해 미국 전기차 수요가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 설비투자를 최대 30%까지 줄일 계획이다. 이창실 CFO는 "새로운 부지에 새로운 생산능력을 구축하기보다는 기존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기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전망

이러한 전환은 전기차 소유자들에게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제조업체의 재정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전기차 전용 기술 혁신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에너지저장 기술 발전으로 충전 인프라와 에너지 신뢰성이 향상되면서 전기차 생태계 전반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엑셀시어 에너지 캐피털의 공동 창립자 앤 마리 덴먼은 "국내에서 조달되는 공급망으로 일정을 지킬 수 있고, 지정학적 변화에 영향받지 않는다"며 미국산 배터리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배터리 기술이 차량뿐만 아니라 전력망까지 지원하는 광범위한 전기화 추세를 보여주는 이번 전환은, 단기적인 전기차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전체 전기 생태계의 발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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