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올해 1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면서 한국 원전 산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합의로 인해 한국은 사실상 글로벌 원전 시장을 웨스팅하우스와 분할하게 됐으며, 특히 주요 선진국 시장에서의 경쟁 기회를 포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합의문에 따르면, 한수원과 한전은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 가입국,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없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이들 지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등 일부 신흥시장에서만 활동이 가능하다.
이러한 시장 분할의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수원은 합의 이후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에서 잇따라 원전 수주 사업을 중단하고 철수했으며,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정감사에서 폴란드 사업 철수도 공식 확인했다.
과도한 경제적 부담과 기술종속 우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이다. 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전 1기 수출 시 기술사용료로 1억 7,500만 달러(약 2,400억원)와 물품·용역 구매비로 6억 5,000만 달러(약 9,000억원) 등 총 8억 2,500만 달러(약 1조 1,400억원)를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해야 한다.
송재봉 의원은 "과거 10년간 3천만 달러였던 기술사용료가 원전 1기당 1억 7,500만 달러로 급증했다"며 "시장 변화를 고려해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과거 대비 약 58배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미래 기술에 대한 종속 조항이다. 한국이 독자 개발한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도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검증 없이는 해외 수출이 불가능하다. 또한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의 연료 공급권도 확보했다. 체코와 사우디아라비아는 100%, 기타 지역은 50%의 연료를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기로 했다.
50년 장기계약의 파장
이번 합의의 계약 기간이 50년이라는 점도 논란이다. 이는 향후 반세기 동안 한국의 원전 기술주권과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김정호 의원은 "50년 동안 원전 핵심 일감과 기술사용료를 제공하고, 글로벌 원전시장에서 한국의 원전 기술주권과 미래 원전산업의 가능성을 웨스팅하우스에 모두 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수원과 한전은 웨스팅하우스에 대한 지급을 보증하기 위해 원전 1기당 4억 달러(약 5,600억원) 규모의 신용장도 발급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재정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다.
정치권의 반발과 재협상 요구
야당은 이번 합의를 '굴욕적 협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정호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눈앞의 실적에 급급하여 무책임하게 내팽개친 원자력 기술주권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며 재협상을 촉구했다.
송재봉 의원은 "전임 윤석열 정부의 조급한 성과주의와 대통령실의 강한 의지가 이런 졸속 계약을 만들었다"며 전임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또한 "2024년 12월 한수원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이 계약 조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이사회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최근 세계 원전 시장에서 수요 증가로 관련 비용이 크게 높아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국익 차원에서 계약 조건이 과도하게 불리하지 않도록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한국 원전 산업의 미래 전망
이번 합의는 한국 원전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에너빌리티, 한전원자력연료 등 국내 원전 관련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에도 제약이 될 수 있다.
한수원과 한전은 현재 유럽 등 전통 시장에서 철수하고 중동과 아시아 신흥시장 중심으로 수주 전략을 변경하고 있다. 한전은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에서 원전 수출 사업을 추진 중이며, 한수원은 SMR 등 차세대 원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진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인해 한국이 원전 기술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과 수출에서도 웨스팅하우스의 제약을 받게 되면서, 한국 원전 산업의 자주성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합의의 구체적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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