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미국 이민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LG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단시간 내 475명을 대규모 체포하면서, 한국과 미국 간 외교 긴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기습 단속’으로 현지 기업은 물론 최근 관세 협상을 어렵게 타결한 우리 정부까지 적잖은 충격을 받은 가운데, 이번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추진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ICE는 단속 직후, “체포된 475명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ICE는 자기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단속을 정당한 법 집행으로 평가했다.

이번 단속은 ICE가 국토안보수사국 등과 공조해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급습하고 수색영장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불법 고용 관행을 단속 근거로 들었으며, 단기 비자 또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으로 입국한 후 취업이 금지된 상태에서 체류 기간을 초과해 근무한 사례를 문제 삼았다.

특히 우리 기업 직원들이 회의나 계약을 목적으로 단기 비자로 입국한 뒤, 현장 업무에 투입된 점이 단속의 핵심 사유로 지목됐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등 근로자 475명이 취업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4일(현지시간) 체포됐다. 헬기와 장갑차, 총기로 무장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이날 아침 공장 출입문을 순식간에 봉쇄하고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단속을 벌였다. /페이스북 영상 캡처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등 근로자 475명이 취업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4일(현지시간) 체포됐다. 헬기와 장갑차, 총기로 무장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이날 아침 공장 출입문을 순식간에 봉쇄하고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단속을 벌였다. /페이스북 영상 캡처

‘제조업 유화’ 뒤의 칼날...트럼프의 이중 전략
이번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내 제조업 확대와 외국 기업 유치에 집중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과 모순돼 보이지만, 실제론 ‘법질서 강화’를 명분으로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WSJ(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 단속은 트럼프의 재임기 중 단일 사업장 기준으로 최대 규모의 불법 체류자 적발 사례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불법 체류자들이었고, ICE는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강조하며, 단속을 미국의 ‘법치주의’ 강화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포장했다.

트럼프의 이런 발언은 제조업 투자 촉진이라는 경제적 목표와 함께 안보 및 이민 문제에서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는 정치적 전략을 동시에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 균열·기업 투자심리 위축...한·미 관계 어디로?
이번 단속은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를 추진해 온 우리 기업들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향후 미국 내 투자 확대에 대한 신중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 “한국 국민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며 워싱턴과 애틀랜타에 외교 인력을 급파하고, 실무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은 외교적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그 이면엔 현지 기업의 리스크 관리와 ‘국민 불안 해소’라는 복합적 목적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와 LG는 각각 “직원이 체포된 사실은 없다”며 “하청업체의 법 준수 여부를 조사 중”이라는 입장을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발표는 단기적으로는 상황 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론 미국 내 고용 및 투자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슈티븐 슈랭크 국토안보수사국(HSI) 특별수사관이 5일(현지 시간) 조지아주 HSI 사무실에서 전날 이뤄진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단속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폭스5애틀랜타 유튜브 캡쳐
슈티븐 슈랭크 국토안보수사국(HSI) 특별수사관이 5일(현지 시간) 조지아주 HSI 사무실에서 전날 이뤄진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단속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폭스5애틀랜타 유튜브 캡쳐

정부 대응, 타이밍과 메시지가 핵심
국내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 정부가 두 가지 방향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는 ‘공감 기반 외교 커뮤니케이션’이다.

한·미 간 투자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번 조치가 정당하고 투명한 법 집행이었는지를 외교적 채널을 통해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측 가능성과 신뢰 회복의 핵심 요소다.

둘째는 현장 기업 보안의 체계적 확보다. 갑작스러운 단속이나 비자 문제와 같은 예기치 못한 리스크로부터 기업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외교 채널과 기업 대응 프로토콜을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제조업 유치를 위해 한국 기업을 환영해 왔지만, ‘법치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민 단속 강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중 전략의 충돌이 만든 외교 시험대
이번 사태는 트럼프의 ‘투자 유도’와 ‘법 집행 강화’라는 이중 전략이 현실에서 충돌한 결과이며, 이는 곧바로 외교·경제적 리스크로 전이됐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권익 보호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도 향후 한·미 간 투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외교 협의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래야 이번 위기를 양국 간 파트너십 강화의 계기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유치 전략 이면에 숨겨진 강경한 이민 단속 기조는, 한·미 경제 협력의 기반을 위협하는 ‘외교적 불확실성’으로 표출됐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이 이재명 정부에 있어 중대한 외교 시험대로 되돌아온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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