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8일자로 ‘안전’, ‘재생에너지’, ‘AI’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정기 개편 시기(연말)를 앞당겨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윤석대 사장이 이번 개편을 통해 “국민 안전과 산업경쟁력 강화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일각에선 실질적 성과보다 이미지 쇄신 목적이 강한 ‘방향성 중심 개편’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윤 사장이 취임한 2023년 6월 이후 K-water 내에서 7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도 ‘중대재해 발생기관’으로 지정돼 경고 조치를 받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조직개편보다 ‘책임 경영’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디지털·기후 대응 흐름 선제 반영”...시기·방향 모두 빠른 판단
이번 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속도’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연말 정기 인사 및 조직개편을 통해 기능 조정을 단행하지만, K-water는 이를 9월로 앞당겼다.
‘정부 국정과제 이행을 선도하겠다’는 명분 아래 안전본부와 재생에너지본부, AI추진단을 각각 신설 또는 격상하며 대응 체계를 강화한 게 골자다.
안전본부는 건설·품질·재난·산업안전을 기능별로 통합하고, ‘안전기동센터’를 운영해 상시 현장 점검 체계를 구축한다.
또 재생에너지본부는 수상태양광·수열 등 물 기반 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한 1.5GW 인프라 구축 로드맵을 제시했다.
아울러 AI추진단은 WEF(세계경제포럼) 글로벌 등대상을 수상한 AI 정수장을 기반으로 디지털트윈 기술 수출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국정과제인 ‘안전 최우선’, ‘AI 3대 강국’, ‘에너지 고속도로’ 기조에 부응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AI추진단은 성과 기반 확대라는 측면에서 신설된 조직 중 유일하게 실적이 있는 부문으로 신뢰를 얻고 있다.

실적은 부진한데...조직만 키운다는 내부 냉소도
그러나 ‘조직을 바꾸는 것’이 곧 ‘성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 K-water는 2018년에도 ‘스마트물관리센터’, ‘물산업플랫폼본부’ 등을 신설하며 유사한 기술 중심 개편을 단행했지만, 대부분은 정책 시범사업에 머물렀고 물관리일원화 정책 이후 역할이 축소되거나 타 기관과 기능이 중첩돼 예산 낭비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스마트물관리센터’는 3년 만에 일부 기능이 축소, 통폐합됐고 ‘물산업플랫폼본부’는 실질 수익 창출보단 대외 홍보 성격이 강해졌다는 평가다.
이번 개편도 본부·추진단 명칭은 화려하지만 구체적인 인력 재배치, 예산 확보, 성과지표(SPI) 설정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조직 명칭만 키운다고 해서 기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공공기관 개편의 고질적 함정이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안전본부’ 신설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7건이나 발생한 시점에서, 조직 확대가 아닌 사고에 대한 책임자 문책과 사고 원인에 대한 투명한 분석이 우선돼야 했다는 내부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 경고기관’이 만든 안전본부, 근본적 전환 없인 역풍 맞을 수도
K-water는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중대재해 경고기관’으로 낙인찍혔다. 이는 단순한 실적 미흡이 아닌 공공기관으로서의 기본 의무인 ‘안전 확보’에서 실패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본부를 격상하는 조직개편이 나오자 공사 내부와 업계에선 “사고 수습보다 이미지 세탁이 먼저”라는 비판도 터져 나왔다. 더욱이 윤 사장의 임기가 1년 가까이 남은 상황에서 단행된 개편이라는 점에서, 퇴임 전 업적 쌓기용이라는 의구심도 불거진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직개편이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선언적 목표를 넘어선 실행계획 수립이다. 각 본부별 KPI(핵심성과지표) 설정 및 외부 감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AI추진단의 경우 기술 적용률 및 실제 운영비용 절감 수치까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실질적 인력 배치와 권한 재조정도 필수다. 안전기동센터의 독립성 보장과 현장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한편 예산 배분이 본부 중심이 아닌 ‘성과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국민 체감이 가능한 변화를 도출해내야 한다고 짚는다. 수상태양광 확대 시 지역 주민 수용성 확보 방안을 병행하는 한편 AI 정수장의 수질 개선 효과 및 유지관리 비용 절감 수치도 공개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조직보다 중요한 건 ‘신뢰 회복’...실적 없이 구조만 바꾼다면 국민 외면 커져
K-water의 이번 조직개편은 정부 정책 방향에 발맞춘 빠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개편이 근본적인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기존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와 반성, 실행 중심의 경영 철학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특히, 중대재해 발생 이후 공공기관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본부 신설이나 추진단 확대가 실효적 안전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 개편은 단지 ‘조직 포장’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K-water의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다. 실적과 신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못한다면 ‘국민 안전과 물 관리의 최후 보루’라는 공사의 위상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조직이 아니라 신뢰를 다시 짜야 할 시점이란 질책이 나오는 배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