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LNG 수출입 현황. 출처 = IGU, ‘2025 Worlf LNG Report’
주요국 LNG 수출입 현황. 출처 = IGU, ‘2025 Worlf LNG Report’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한국 천연가스 시장은 오랫동안 공급자 중심의 독점적 구조로 운영되어 왔다. 천연가스 도입과 도매를 한국가스공사(KOGAS)가 사실상 독점하면서, 민간 기업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로 인해 시장 경쟁 부재와 가격 왜곡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한국가스공사는 수입한 가스를 일정한 공식에 따라 국내 도시가스 회사들에 공급하지만, 국제 가격 변동이 투명하게 반영되지 않고 정부 정책에 따라 요금이 조정되곤 한다. 그 결과 천연가스 요금이 시장 원가와 동떨어지게 책정되며, 가격 신호가 왜곡되는 현상이 누적되었다. 

2022년 글로벌 에너지 위기 시기에는 국제 LNG 가격이 폭등했음에도 국내 가스요금 인상이 늦어지면서 가스공사에 수조 원대 미수금이 쌓이는 등 정책적 왜곡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러한 왜곡된 가격 체계는 소비자에게 에너지 절약 유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에너지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낳았다.

핵심 정보의 비공개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천연가스 도입 가격이나 계약 조건 등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다. 

현대경제연구원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천연가스 시장은 도입가격, 계약조건 등 핵심 정보가 비공개로 운영되어 시장가격 형성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공급 구조의 불투명성은 가격 경쟁을 가로막고 효율적인 시장 가격 형성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 같은 독점 구조와 정보 비대칭은 공급 안정성과 정책 수립 측면에서도 한계를 드러낸다. 한정된 수입선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유일한 도매공급자가 정부 정책 방향에 크게 영향받기 때문에 급변하는 국제 에너지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천연가스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은 가스공사를 통한 중앙집중형 조달에 의존하여 기민한 조달 다변화나 유연한 계약 전략을 펴는 데 제약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의 경직성이 한국 천연가스 수급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구조에서는 경쟁 부재로 인한 비효율, 가격 왜곡, 그리고 정책 집행의 경직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단지 민간 기업의 이익 차원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국가 경제의 경쟁력 측면에서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 시장 개혁의 필요성: 경쟁 도입과 배관망 개방

천연가스 시장 구조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에너지 전환 시대에 천연가스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전환 연료로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행 체제로는 그 역할을 충분히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 부문의 참여와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허무는 것이 시장 개혁의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경쟁 도입은 가장 핵심적인 변화 방향이다. 우선 LNG 도입(수입) 부문과 도매 판매 부문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진입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일부 대기업이나 발전사들이 자가사용 목적의 직수입을 제한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그 물량이 2024년 기준 전체 LNG 수입의 약 26.4%까지 늘어났다. 이는 민간도 해외 LNG 시장에서 가격 협상력과 조달 능력을 키워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직수입 물량은 자기 소비 목적으로만 쓰일 수 있고, 제3자에게 판매는 금지되어 있어 유통 시장의 경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따라서 도입 물량을 민간이 제3자에게 판매하거나 국내 도매시장에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공급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천연가스 도입부문에 경쟁을 도입하면 2025년 도입가격이 현재 추세 대비 6~7%가량 낮아지고, 2030년에는 9% 이상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배관망 중립성 확보 또한 시장 개혁의 필수 과제다. 현재 한국가스공사가 수입·판매와 배관 운영을 모두 겸업하는 구조에서는, 민간 직수입자가 수입한 가스를 다른 수요처에 공급하려 해도 가스공사 소유의 전국 배관망 이용에 제약이 따른다. 이를 해소하려면 전력망이나 통신망에서와 같이 '제3자 접근권(TPA)'을 보장하는 원칙이 천연가스 배관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부나 국회에서도 이러한 망 중립성 법제화를 추진 중인데, 배관망 운영을 독립된 기관이 맡거나 최소한 운영자의 비차별적 개방 의무를 명확히 하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다.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가스시장은 배관망에 대한 제3자 접근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며, 한국도 영국이나 독일과 같이 민간 참여와 독립 규제기관의 조합을 통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축은 천연가스 도매시장의 도입이다. 현재 한국에는 가스 도매시장이 부재하여 가격이 행정적으로 정해지지만, 시장 거래를 통한 가격 형성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국 등은 가스 거래 허브를 운영하면서 수급에 따른 가격이 실시간으로 결정되고, 이를 통해 수요자 중심의 거래가 가능해진다. 한국에서도 장기적으로 가스 거래소나 가스 도매 풀(pool)을 만들어 발전사, 도시가스사, 대형 소비자 등이 경쟁 입찰과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 역시 “도매시장 부재 등으로 민간 참여가 제한적”인 현실을 지적하며, 향후 전력시장과 함께 가스시장 구조도 효율성과 공공성의 균형 하에 개편할 것을 제언하고 있다.

천연가스 시장 개혁의 방향은 “도입·공급부문 경쟁 도입, 배관 인프라 개방, 도매 거래시장 조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안보와 가격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새 정부 에너지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도 에너지 정책 과제로 전기·가스·열 에너지 통합 거버넌스 구축, 가스시장 경쟁 도입 등을 언급하며 변화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 민간 참여 확대가 가져올 기대 효과와 과제

민간의 적극적 참여는 천연가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구조 개편의 실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민간 기업들은 이미 직수입을 통해 가격 협상 노하우를 쌓고 글로벌 LNG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등 역량을 키워왔다. 시장 문턱이 낮아지고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될 경우, 민간 부문의 창의와 효율성이 가스 산업 전반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가격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다. 여러 수입자가 경쟁하면 LNG 도입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도매 거래를 통한 시장 가격이 형성되면 왜곡 없는 가격 신호가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전달된다. 이는 가정용·산업용 가스요금에 합리성을 부여하고, 에너지 수요자들이 가격에 따라 행동을 조정하도록 만들어 에너지 효율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공기업 독점이 깨지면서 공급자의 비용 절감 노력과 서비스 개선 유인도 강해질 것이다.

둘째, 공급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 강화 측면이다. 복수의 플레이어가 존재하면 조달선 다변화와 비상시 백업 공급 체계 구축이 용이해진다. 가스공사 한 곳에만 의존할 때보다, 민간 수입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LNG를 들여오면 공급망이 다원화되어 특정 리스크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 

또 국제 LNG 시장이 구매자 우위로 재편되고 있는 최근 흐름 속에서 한국이 민간+공공의 복수 창구로 협상에 나설 경우, 수급 불안시에도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는 협상력이 생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경쟁과 협력을 병행해 연료비 변동성에 대응해야 한다”고 제언하며, 민관 역할 분담을 통한 안정적 에너지 수급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셋째, 신사업 기회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민간 참여 확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LNG 벙커링 산업이 대표적이다. LNG 벙커링이란 LNG를 선박의 연료로 공급하는 사업으로,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연료 규제 강화로 급성장하는 신시장이다. 한국은 세계 3위의 조선강국이자 주요 해운국가로서 LNG 추진선박 확대에 대응한 벙커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는 “부산, 울산 등 주요 항만에 LNG 벙커링 터미널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 투자를 적극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가스공사뿐 아니라 민간 대기업들이 합작으로 LNG 벙커링 선박을 건조하거나, 해외 에너지 메이저와 협력해 국내 벙커링 사업에 뛰어드는 등 민간 주도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민간의 투자와 혁신이 뒷받침된다면, 한국은 아시아 항만의 LNG 연료공급 허브로 도약하며 관련 기자재, 선박, 서비스 산업까지 연계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넷째, 발전용 천연가스 및 연료전환 부문의 탄력성이 높아진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 시스템에서 LNG 발전이 일종의 백업 역할을 해야 하는데, 민간 전력사들의 자발적 LNG 직수입 및 발전 참여를 독려하면 전력 수급의 유연성이 향상된다. 피크 시에 가동할 가스발전기를 민간이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필요 연료를 직접 조달할 수 있게 한다면, 전력망 안정에 기여하면서도 공공 재정 부담 없이 민간 자본으로 안정 공급 능력을 확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민간 참여를 확대하더라도 공공성과 안전은 놓쳐서는 안 된다. 가스 산업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고 거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경쟁 도입 시에도 독립 규제기관의 감독과 기본 요금 규제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갑작스러운 구조 개편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 이행이 중요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도매시장 개설이나 배관망 분리는 수년간의 준비와 규제정비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한국도 시범 사업 도입,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관련 법·제도 정비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기업 노조 등에서는 민영화에 대한 우려와 반대 목소리도 있는 만큼, 에너지 안보와 공공서비스 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이끌어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천연가스 시장 구조 개혁이 “단순한 민영화 논쟁을 넘어 가격 결정 구조, 운영 투명성, 투자 효율을 모두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 속에서 가스의 전략적 역할은 여전히 크다”며 “민간 참여 확대와 공기업의 조정 기능이 조화를 이뤄야 시장 효율성과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요국 천연가스 시장 비교
주요국 천연가스 시장 비교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