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정부가 ‘기후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온 정책자금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화석연료 산업에 집중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한국의 녹색금융 체계가 국제 기준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인프라인 LNG 운반선이 기후정책자금의 주요 수혜처로 드러나면서, 정책의 신뢰도와 지속가능성 모두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신장식 의원실이 2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대 공적금융기관의 기후정책자금 94조1715억원 중 17조6846억원, 즉 20%가 LNG 운반선 금융에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한국수출입은행은 해당 자금의 36%를 LNG 선박에 집중 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 금융’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실제론 화석연료 기반 인프라에 공적 자금이 흐른 셈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탈LNG’ 선언...한국만 녹색 분류 고수
문제의 핵심은 LNG가 여전히 ‘친환경 선박 연료’로 분류되어 기후금융의 지원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석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전환연료’로 간주되었지만, 이는 단순 연소 시점(tank-to-wake)만을 고려한 분석일 뿐이다.
최근 기후과학계는 연료의 전생애주기(well-to-wake) 배출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평가하고 있으며, LNG는 이 기준에서 석탄보다 더 높은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산 LNG의 전생애주기 배출량은 석탄 대비 33% 더 많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2023년부터 선박 연료의 온실가스 기준을 전생애주기로 전환하면서 LNG의 ‘친환경’ 지위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여전히 LNG 운반선을 기후금융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는 유럽투자은행(EIB), 영국 수출입은행(UKEF), 덴마크 수출신용기금(EIFO) 등 주요 국제 공적금융기관들이 2021~2022년 사이 LNG 관련 금융을 전면 중단한 흐름과는 크게 엇갈리는 행보다.

기후리스크 평가 없이 좌초자산 쌓는 ‘녹색 포장’
경제적 측면에서도 LNG 운반선 중심의 산업 전략은 고위험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2024년 말부터 글로벌 LNG 수요가 둔화되고 공급 과잉이 겹치며, 운임은 손익분기점 이하로 추락했다.
발주량 역시 2024년 77척에서 2025년 15척으로 80% 이상 급감했으며, 이 중 실제 수요에 기반한 발주는 13척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금융지원은 좌초자산 위험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17만5000㎥급 LNG 운반선 1척은 연간 약 1233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현재 건조 중인 350척의 배출량은 인도 전체 연간 배출량(43억톤)을 상회할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메탄 슬립’이다. LNG 운반선은 연료 연소 과정에서 최대 15%의 미연소 메탄을 대기 중으로 방출하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한 온실가스다. 이는 LNG가 단지 ‘적은 배출’이 아니라 ‘숨겨진 고배출’ 산업임을 시사한다.
“녹색 기준 재정립 없이는 제도도 공허”...정책 신뢰 위기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후금융 체계가 국제 흐름에 역행하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기준 아래서는 금융감독 강화나 공시 확대 역시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질의에 대해 금융기관의 기후리스크 평가 의무화 등 ESG 정책 7개 항목에 전면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기준 자체가 ‘기후 역행적’이라면 제도 도입 효과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신장식 의원은 “이번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 함께 기후금융 정책을 재정비한다면, 국제 기준에 맞는 진정한 의미의 녹색분류체계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며 “피상적인 제도 개선이 아니라 화석연료는 화석연료로 분류하는 상식적 기준을 도입해야 그린워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의 신은비 연구원 역시 “기후리스크를 평가하고 기후금융을 늘린다고 하지만, 정작 화석연료 인프라를 녹색으로 분류하는 후진적 기준을 그대로 두고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LNG를 화석연료로 분류해 금융 지원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한국만 시대착오적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새로 출범을 앞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녹색 분류체계를 바로잡고, 실질적인 기후금융 원칙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금의 기준을 그대로 둔다면, 한국의 ‘녹색 금융’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받기 어려운 이름만의 정책으로 남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