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유럽 산업계가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 시대에 본격 진입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그린 수소, Renewable Hydrogen) 생산은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수소보다 30~100%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유럽 수소은행(European Hydrogen Bank)의 경매 분석에 따르면 일부 산업·운송 분야 수요처들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 의사를 보이며, 이는 규제 압박과 전략적 대응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 보조금과 규제, 가격 괴리 메우는 양날의 칼
2024년 첫 EU 경매에서 낙찰가는 0.37~0.48유로/㎏ 수준에 형성됐지만, 같은 시기 스페인 개발자들의 실제 추정 생산원가는 5.50유로/㎏에 달했다. 이어 2025년 일반 프로젝트는 0.20~0.60유로/㎏, 해운 부문은 최대 1.88유로/㎏까지 입찰가가 형성됐다. 이처럼 낙찰가와 원가의 큰 격차는 생산자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고, 수요자가 규제 준수 및 미래 리스크 회피를 위해 일정 수준의 ‘프리미엄’을 감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 배경에는 정책이 있다. 개정 재생에너지 지침(RED III)은 2030년까지 정유·비료·암모니아 등 수소 집약 산업에서 42.5%를 재생수소로 조달할 것을 의무화했다. 또한 EU 배출권거래제(EU ETS) 강화로 화석연료 기반 회색 수소(Grey Hydrogen)의 가격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유럽 수소은행은 보조금 지급을 실구매계약(offtake agreement)과 연계해, 투기적 입찰이 아닌 실제 조달을 전제로 한 시장 신호를 제도화했다.
■ 비용 장벽과 시장 리스크
그럼에도 그린 수소의 경제성 장벽은 여전히 높다. 유럽 내 그린 수소의 균등화발전비용(LCOH)은 4~6유로/㎏, 회색 수소 대비 수㎏당 수 유로 이상 비싸다. 풍부한 태양광·풍력 자원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조차 보조금 없이는 운영비·투자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과도하게 낙관적인 입찰은 금융종결 실패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시장 신뢰도 하락으로 직결된다”고 경고한다.
■ 탈탄소 대안 없는 업종, 가장 적극적 수요층
가장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는 분야는 대체재가 없는 탈탄소 업종이다.
해운·항공은 전주기 배출 압력에 직면해 있으며, 실제로 EU 경매에서 가장 높은 입찰가를 기록했다. 비료·정유업계 역시 수소 사용 경험과 규제 리스크 회피 필요성 때문에 프리미엄을 감수하는 모습이다.
지리적 요인도 경제성에 차이를 만든다. 스페인·북유럽처럼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인허가 절차가 원활한 지역은 경쟁력 있는 공급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리드 비용이 높은 지역은 불리하다.
■ 시장의 지속성, 정책·계약·기술이 열쇠
전문가들은 장기 조달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년간 공급 계약을 체결하거나, 제품 기준에 그린 수소 사용을 명문화하면 생산자는 안정적인 투자 환경 속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형성된 그린 프리미엄 구조는 취약하며, 향후 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의 그린 수소 시장은 규제 압력, 재정 리스크, 기술 학습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현재 초기 수요자들이 비싼 수소를 전략적으로 수용하는 선택이, 장기적으로 비용 경쟁력을 갖춘 수소 경제로 이어질지, 아니면 일시적 고비용 부담으로 끝날지가 향후 몇 년내 판가름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