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시장조사업체 웨스트우드 글로벌 에너지(Westwood Global Energy)는 2030년까지 EU가 목표한 40GW 전해조(전기분해장치) 설비 용량 중 단 12GW만 가동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계획의 20% 수준에 불과하며, 2030 목표 달성 가능성이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는 업계 우려를 반영한다.
웨스트우드의 준 사사무라(Jun Sasamura) 수소 담당 매니저는 “현재 상황으로는 EU의 2030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 보인다”고 직설적으로 평가했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분해로 생산돼 청정성이 높지만, 비용 경쟁력이 화석연료 대비 크게 떨어진다. 독일 디로슈탈(Dirostahl) 사의 로만 디더릭스(Roman Diederichs) 대표는 “그린수소 접근 비용이 MWh당 150유로로, 천연가스(MWh당 3035유로) 대비 45배 비싸다”며 “경제적 자살에 가깝다”고 경고했다.
포르투갈 EDP와 스페인 이베르드롤라(Iberdrola) 등 대형 에너지 기업도 수요 부재와 실구매자 부재를 이유로 프로젝트를 보류했다. EDP의 미구엘 스틸웰 드 안드라데(Miguel Stilwell d’Andrade) CEO는 “문제는 수요다. 누군가 실제로 수소를 사야 한다”며, 업계가 ‘실망의 골짜기(valley of disappointment)’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2035~2040년 전까지는 가격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내다본다.
수송·저장 인프라 부족도 시장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수소는 고압 파이프라인이나 극저온 액화 설비가 필요한데, 기존 천연가스망은 수소취성·누출 위험으로 대규모 개보수가 불가피하다. 스페인 가스망 운영사 에나가스(Enagás)의 아르투로 곤살로(Arturo Gonzalo) CEO는 “인프라는 시장이 성숙한 뒤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생기려면 먼저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내 주요 수소 인프라 개발은 2~3년의 지연이 예상되며, 이는 프로젝트 수익성과 금융 조달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시장 현실을 직시한 각국 정부는 수소 목표를 축소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팬데믹 이후 회복기금 6억 유로 이상을 수소에서 바이오메탄으로 전환했고, 프랑스는 2030년 전해조 목표를 30% 이상 낮췄다. 포르투갈은 45% 감축, 네덜란드는 원전 확대를 위해 수소 예산을 줄였다. 호주 역시 막대한 정부 지원에도 프로젝트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인 저탄소 수소(블루 수소 포함) 생산능력은 600만 톤에 불과하다. 2050년 넷제로를 위해 필요한 4억 5,000만 톤과 비교하면 두 자릿수 배수의 격차가 난다.
전문가들은 “그린수소는 여전히 탈탄소 전략의 필수 퍼즐이지만, 상업화·대규모 산업 도입까지의 경로는 초기 기대보다 훨씬 길고 험난하다”며, 현행 정책과 투자 구조의 대수정 없이는 심각한 ‘수소 부족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그리스, 첫 ‘수소법’ 제정…EU 인증체계 본격 도입
- ‘초대형 그린수소 단지’ 카자흐스탄에 들어선다
- ‘탈탄소 전환 현실화’…호주, 상업형 수소생산 시대 연다
- 英, 10개 그린수소 프로젝트 보조금 계약 체결
- 수소전쟁의 히든카드, 핑크수소
- [기획 시리즈] 재생에너지 활성화 해야...당면 과제와 전망(2)
- [초점] 브리지 연료에서 탄소중립 연료까지…LNG 진화 3단계
- "IMO 넷제로 압박, 조선업계 친환경 생존전략 시급"
- DNV “해운 에너지 전환, 실행 국면 돌입”…2050 전망 보고서 발간
- EU 집행위, CBAM 이행규칙 공개 의견 수렴 절차 개시
- [초점] 유럽 기업들, 규제·탄소비용 앞에 ‘비싼 수소’도 선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