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원유생산시설에 탱커들이 접안해 있다.
이라크 원유생산시설에 탱커들이 접안해 있다.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이라크가 방대한 가스 자원을 적극 개발하며 에너지 주권 강화와 경제 성장을 위한 도전에 나섰다. 이라크는 확인된 천연가스 매장량이 3.5조 입방미터(Tcm)로 세계 매장량의 약 1.5%를 차지하지만, 실제로 활용 가능한 가스량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이라크의 궁극적인 가스 매장량은 8.0Tcm에 이를 수 있으며, 이 중 약 30%는 유전 개발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비수반가스(Non-Associated Gas)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라크의 가스 개발이 시급한 이유는 단순한 매장량 때문이 아니다. 자원 낭비, 산업 발전, 에너지 독립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가스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라크가 가스 개발에 나서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가스 소각 문제다.

이라크는 유전 개발의 부산물인 수반가스(Associated Gas)를 매년 17.8Bcm(10억 입방미터) 소각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이다. 2018년, 이라크는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일상적인 가스 소각 제로(Zero Routine Flaring)’ 이니셔티브에 가입했지만, 현재도 여전히 연간 17.7Bcm의 소각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가스 소각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초래하며, 가스 포집 및 활용이 가능할 경우 이라크의 전력난 해소와 가스 수출 확대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토탈에너지(TotalEnergies)는 이라크 정부와 약 27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중 100억 달러는 가스 포집과 발전 및 수출을 목표로 한 ‘가스 성장 통합 프로젝트(Gas Growth Integrated Project)’에 집중될 예정이다.

가스 개발이 활성화될 경우, 이라크는 석유화학 산업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위해서는 에탄(Ethane) 공급이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하루 약 28.3Mcm(백만 입방미터)의 가스가 필요하다. 이라크가 석유화학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400억~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는 현재 석유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가스와 석유화학 산업을 기반으로 경제 다각화를 추진할 경우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가 가스 개발을 통해 기대하는 또 하나의 효과는 에너지 독립이다.

현재 이라크는 전력 생산을 위해 이란으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으며,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이란산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도입해왔다. 미국은 이라크가 이란의 석유·가스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경로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압박으로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란산 에너지 수입을 줄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이라크가 자체적인 가스 생산을 확대할 경우,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라크는 러시아와도 가스 개발 협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라크가 어느 국가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향후 에너지 정책과 외교적 입지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라크는 그동안 방대한 가스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왔다. 하지만 최근 가스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반가스 포집, 석유화학 산업 육성, 에너지 독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 러시아 등 주요 에너지 강국들과의 관계 설정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라크가 가스 개발을 통해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아니면 기존의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는 향후 몇 년간의 정책 방향과 외교 전략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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