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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에너지 안후중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앞으로 바뀔 우리 정부의 원자력 관련 정책방향이 관심이다. 이 지면에서 먼저 살펴보는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후보 이재명의 원자력 정책은 과거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실용주의' 노선으로 뚜렷하게 선회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시절 안전을 최우선시하며 탈원전을 외쳤던 모습에서 나아가, 이제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적극적인 육성과 기존 원전의 조건부 계속운전 가능성을 시사하며 에너지 안보와 경제 성장, 미래 산업 수요 대응이라는 현실적 과제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정책 기조의 변화: '탈원전'에서 '실용주의'로

이재명의 원자력 정책 여정은 명확한 변곡점을 거쳐왔다. 경기도지사 시절(2021년 이전), 그는 '탈원전'이 가야 할 길임을 분명히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 경주·포항 지진으로 확인된 한반도의 지질학적 위험성, 원전 주변의 높은 인구 밀도 등을 근거로 들며 원자력의 안전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그는 "원전을 경제 논리로만 따져 가동하는 일은 전기세 아끼자고 시한폭탄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노후 원전의 즉각적인 폐쇄와 무리한 수명 연장 중단을 촉구했다. 이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미래 세대를 경제적 효율성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가치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당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와도 일치했다.

그러나 2022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그는 '탈원전' 대신 '감(減)원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전략적 변화를 모색했다. 이는 '탈원전'이 단기간 내 모든 원전 가동 중단을 의미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보다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법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감원전'의 핵심은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하되, 이미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은 설계 수명까지 안전하게 운영하며, 설계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주목할 점은 문재인 정부에서 건설이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에 대해, '신규 건설'과는 다른 사안으로 보고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건설 재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는 원자력을 이념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실용적 관점에서 관리하겠다는 신호였지만, 여전히 사용후핵연료 문제("뾰족한 수가 없다"고 언급) 등을 이유로 원전의 추가 확대에는 선을 그었다.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이재명의 원자력 정책은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더욱 과감하게 전환했다. 당 차원에서 '탈원전' 용어 사용을 공식적으로 지양하기 시작했고, 과거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제기됐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안보 위협 증대, 반도체·AI 산업 등으로 인한 미래 전력 수요 급증 예상, SMR 등 신기술 부상,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 및 중도층 확장 필요성 등 국내외 환경 변화와 정치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신규 건설 '반대' 원칙 속 신한울 3·4호기 '미묘한 입장'

현재 이재명은 새로운 대형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과 장기적 위험을 수반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이는 신규 건설이 어렵다는 논리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는 복잡한 변수다. 이미 상당한 준비 작업이 진행된 점을 고려해, 그는 대선 당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건설 재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현 정부가 건설 재개를 공식화하고 추진 동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재생에너지와 SMR을 우선시하는 기조를 유지하며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실용주의'가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지만, 현시점에서 민주당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적극 찬성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신규 원전 건설을 계속 추진하려는 현 정부와 뚜렷한 대립각을 형성하는 지점이다.

기존 원전 계속운전, '조건부 허용'으로 대전환

원자력 정책 변화의 가장 극적인 지점은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수명 연장)에 대한 태도 변화다. 과거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불가'라는 단호한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2024년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 유세 현장에서 한빛 1·2호기 계속운전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안전성이 확보되고 주민들이 동의한다면 융통성 있게 대응하겠다"고 발언하며, 사실상 엄격한 조건(안전성, 주민 동의) 하에 계속운전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확보라는 현실적 필요와 지역 민심 등을 고려한 '실용주의'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다만, '엄격한 안전성 확보'의 구체적인 기준과 '주민 동의'를 확인하는 절차 및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았다. 향후 실제 계속운전 추진 과정에서 이 부분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으며, 환경단체 등의 반발과 정부의 적극적인 계속운전 정책 사이에서 민주당이 어떤 균형점을 찾아갈지 주목된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의 유연성 확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과거 발언과의 불일치로 인한 '말 바꾸기' 비판 및 정책 일관성 논란을 동시에 안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영원한 숙제'… SMR은 '게임 체인저' 기대

수십만 년 이상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이재명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가장 심각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로 인식하는 분야다.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의 포화가 임박했다는 점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오랜 논의 끝에 2025년 2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며 관리체계 마련의 첫발을 뗐다. 그러나 법안 처리 과정에서 부지 내 저장시설의 영구화 가능성, 관리위원회 독립성 문제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와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향후 이 대표와 민주당은 특별법 이행 과정, 특히 중간저장 및 최종처분시설 부지 선정에서 절차적 투명성, 안전성 검증, 그리고 지역 주민 수용성 확보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부지 선정의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기술적 난제는 여전히 남아있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원자력 정책 전반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해결 난망한 과제와 달리, 소형모듈원자로(SMR)는 그와 민주당의 정책에서 '미래 먹거리'이자 '핵심 동력'으로 급부상했다. 2022년 대선 당시만 해도 SMR은 R&D 참여 및 지원 대상으로 언급됐을 뿐, 단기 상용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심지어 2022년 말 2023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는 민주당이 정부의 SMR 개발 예산 삭감을 주장해, 대선 공약과 배치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물론 최종 예산은 일부 복원되었다는 주장과, 예산 삭감 주장이 과장되었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그러나 2024년을 기점으로 SMR에 대한 입장은 180도 변했다. 특히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폭발적인 전력 수요 증가가 예상되면서, SMR은 이를 감당할 유력한 대안이자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또한 SMR 시장 선점을 통한 경제 성장 및 수출 증대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이에 이재명과 민주당은 SMR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으며, 2024년 말 2025년도 예산 심의에서는 정부의 SMR 예산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아가 SMR 기술 개발, 실증, 인허가, 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 등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SMR 지원 특별법' 제정을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추진하며 정책적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차세대 원전 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표를 반영하지만, 안전성 및 경제성 검증 부족, 핵폐기물 문제 등을 지적하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에너지 믹스: '재생에너지 최우선' + '원자력 실용적 활용'

이재명의 에너지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는 여전히 재생에너지 확대에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이를 위해 국가 주도의 지능형 송배전망인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다. 관련 규제 합리화, 국가 주도 입지 확보 등 구체적인 지원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 노선이 강화되면서, 전체 에너지 믹스에서 원자력의 역할은 과거 '감원전' 시기보다 더 중요하게 인정받는 분위기다.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을 조건부로 용인하고 SMR을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적극 육성하려는 움직임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날씨 등에 따른 발전량 변동성)을 보완하고 AI 등으로 급증할 미래 전력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나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에너지원별 비중 목표나 로드맵은 아직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2022년 대선 당시에는 NDC 상향 및 2040년 탄소중립 조기 달성 등 야심찬 목표가 거론되기도 했으나, 실제 에너지 믹스 구성에 대해서는 유동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위해서도 원자력 확대가 근본 해법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자체의 보급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원자력 산업의 미래: 기회와 도전의 공존

이재명의 '실용주의' 원자력 정책은 한국 원자력 산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위축되었던 원전 생태계는 기존 원전 계속운전 가능성과 SMR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가능성에 기대를 걸 수 있다. 특히 SMR 분야에서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국내 에너지 문제 해결뿐 아니라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한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발전할 잠재력도 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과제 역시 산적해 있다. SMR은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로 경제성 검증이 충분하지 않으며, 기존 대형 원전과 다른 안전 규제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기존 원전 계속운전 역시 안전성 강화를 위한 막대한 비용 투자가 필요하며,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법 마련이 요원한 상태로, 원자력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다.

이재명의 '실용주의' 노선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책의 일관성 부족 및 정치적 타협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향후 SMR 기술의 성숙도, 계속운전 추진 범위와 속도, 재생에너지 보급 실적, 그리고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 여부가 한국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에너지 안보, 경제 성장, 탄소 중립이라는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정책적 신뢰를 확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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