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테흐스 UN사무총장. / UN 유튜브방송 화면 캡쳐
구테흐스 UN사무총장. / UN 유튜브방송 화면 캡쳐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지구는 이미 끓고 있다. ‘6차 대멸종’ 경고 속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한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의 기술혁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 국내외 혁신 사례를 통해 인류 생존의 비법을 찾아본다. / 편집자 주

'6차 대멸종' 재촉하는 기후위기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이끌어 낸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은 지난달 15일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5℃ 상승한(2024년 기준) 현재 상황을 “글로벌 보일링(Global Boiling)”이라며 “지구가 단순히 따뜻해지는 것을 넘어 끓고 있다”고 경고했다.

2023년 7월 안토니오 구테흐스 현 사무총장 역시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며 “최악의 상황을 피할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회원국들의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5일 에너지공단 초청 강연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국가로, 기후협정에서 두 차례나 탈퇴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후위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 문제”라며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100년까지 6차 대멸종(Mass Extinction)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약 2억5200만년 전 지구 생물의 98%가 사라졌던 ‘페름기 대멸종(3차 대멸종)’도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비율은 현재보다 최소 100배 높았으며, 평균 기온은 6도 이상 상승했다.

지금도 해수면 상승과 이상기후, 대형 산불과 가뭄 등 기후위기 징후는 지구 곳곳에서 일상처럼 나타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인류의 운명이 걸린 기후위기 재앙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정부나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엘디카본 공장. / 엘디카본 제공
엘디카본 공장. / 엘디카본 제공

위기를 기회로...지구 지키는 혁신 스타트업

이처럼 절박한 위기 속에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게 바로 기후테크(Climate Tech)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은 이산화탄소 저감, 에너지 전환, 자원순환, 지속가능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로 답을 찾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기후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도전이자 가장 큰 기회”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는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며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한 숙제 앞에서 기술로 답을 제시한다.

타이어 재활용 스타트업 '엘디카본'

국내에서 기후테크 혁신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엘디카본’은 폐타이어 재활용의 한계를 기술로 뛰어넘은 스타트업이다.

2022년 기준 국내 폐타이어는 연간 40만톤, 전 세계적으론 약 3000만톤 이상 발생한다. 엘디카본은 이런 폐타이어를 무산소 열분해 기술을 통해 타이어 보강소재인 카본블랙과 대체 원유(열분해유)로 전환한다.

지난달 충남 당진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폐타이어 자원순환공장을 준공한 엘디카본은 생산한 재생카본블랙을 국내외 주요 타이어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유럽 친환경 인증 ‘ICC PLUS’를 획득한 이 제품은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7년 설립된 엘디카본은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 넥센타이어 등 국내 주요 타이어 업체들에 납품하고 있다. 여기에 미쉐린과 브릿지스톤 등 글로벌 타이어 회사들도 납품을 요청한 상태다.

타이어 업체들이 엘디카본에 손을 내미는 이유는 재생카본블랙이 유럽 에너지 지침에 부합하는 ‘ICC PLUS’ 친환경 인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글로벌 혁신사례로는 스위스의 ‘클라임웍스(Climeworks)’가 있다. 이 회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DAC(Direct Air Capture) 기술의 상용화를 이끈 대표 주자다. 

클라임웍스, "이산화탄소를 암석으로"

2009년 스위스에 세워진 이 회사는 2023년 1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암석으로 만드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는 제3자 인증기관의 검증을 받았다. 클아임웍스는 현재 미국과 유럽 등에서 대규모 DA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최근까지 1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유치한 클라임웍스는 미국 에너지부의 DAC 허브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바텔 연구소, 에어룸카본테크놀로지 등과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사이프러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21년 클라임웍스가 아이슬란드에 설치한 세계 최초의 상업용 DAC 플랜트 ‘Orca’는 연간 4000톤의 CO₂를 포집해 지하에 영구 저장하는 시스템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트라이프 등 글로벌기업들과 탄소중립 파트너십을 맺으며 산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클라임웍스 관계자들이 아이슬란드의 Orca 공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클라임웍스 홈페이지 캡쳐
사진클라임웍스 관계자들이 아이슬란드의 Orca 공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클라임웍스 홈페이지 캡쳐

‘탈탄소’ 향한 혁신기술·비즈니스 모델

기후테크는 에너지, 소재, 농업, 순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핵심은 ‘탈탄소(decarbonization)’다.

에너지 전환 영역에선 태양광, 풍력과 함께 고체전지, 나트륨 배터리 등 차세대 저장 기술이 주목받고 있으며 AI 기반 스마트그리드 및 수요 예측 솔루션의 상용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분야에선 모듈형 포집 장치, 바이오 기반 기술, 흡착제 고도화 등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포집한 탄소를 건축자재나 화장품 원료로 재활용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농업 분야에선 드론 정밀농업, 스마트팜, 식물성 단백질 기술 등이 각광받는다. 미국 ‘리벨리어스 푸드’는 식물성 닭고기 제품을 개발해 학교·병원 등 B2B 유통망을 구축, 수익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2023년 기후테크 분야 글로벌 투자 규모는 약 820억 달러로, 전체 벤처투자의 10%를 넘어섰다. 특히 에너지 저장,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대체 식품 등 분야에 자본이 집중되고 있다.

기후테크는 산업 전반의 ESG 수요와 글로벌 탄소감축 흐름이 맞물리며 민간 중심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2032년까지 시장 규모가 1480억 달러(약 2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기후테크는 기존 산업과 달리 초기 기술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고위험·고비용 산업인 만큼, 성공적인 진입을 위해선 다각적인 전략 수립이 요구된다.

최근엔 단순한 기술력보다 ‘임팩트 측정 가능성’과 ‘스케일업 가능성’이 중요해졌다. ESG 보고 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정량적 탄소감축 효과를 증명할 수 있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탄소 크레딧 플랫폼 등은 이런 수요를 반영한 사례다.

픽사베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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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정책 조화 통한 생태계 구축 필요

우리 정부도 기후테크 육성을 국가 차원 전략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후테크 집중 육성사업’을 통해 에너지 전환, 자원순환, 탄소포집 등 6대 분야 R&D를 지원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딥테크 창업기업’으로서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선정해 자금과 글로벌 진출을 돕고 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기후테크를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 아래 타운홀 미팅과 투자자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규제 유예제도의 부족 △실증 인프라 부족 △장기 자금 확보의 어려움은 걸림돌이다.

정부 주도의 초기시장 조성과 제도화된 지원책 활용, 그리고 경제성 부족으로 방치됐던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병행될 때 국내 기후테크 생태계도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문가들은 탄소가치 평가체계 확립과 규제샌드박스 확대, 공공수요 연계형 실증사업 강화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테크는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생존 전략이자 새로운 경제 질서를 창조하는 열쇠다. 아직 국내에는 유니콘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없다. 1000개의 글로벌 기후 유니콘 시대를 준비하려면,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장기적 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갈고닦고 있다. 이들의 도전은 지구를 살리는 혁신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강력한 투자다. 기후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이 변화의 최전선에 우리가 함께 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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