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에너지 개념도./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분산에너지 개념도./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투데이에너지 장재진 주필]

정부가 추진해 온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이 마침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지난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기반으로 중앙집중식 전력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1일 7개 지자체를 최종 후보지로 발표하면서 분산특구의 윤곽이 한층 구체화됐다. 기업 유치, 지역 균형발전, 에너지 자립 등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분산특구가 과연 에너지 대전환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공급 안정성'과 '수요의 지역 편중' 해결 대안

오랜 시간 대한민국 전력 시스템의 숙제는 '공급 안정성'과 '수요의 지역 편중' 문제였다. 수도권 중심의 고압 송전망은 기술적 한계뿐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 저하와 갈등 비용 증가를 초래했다. 장거리 송전의 비효율성과 환경 문제, 그리고 지역 주민 반발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정부는 발전과 소비를 지역 단위로 연계하는 새로운 전력 패러다임인 분산에너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제정을 통해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송전망 구축 지연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며 에너지 주권을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이번에 선정된 7개 최종 후보지는 이러한 분산에너지 정책의 핵심 추진 동력이 될 전망이다. 분산특구로 지정되면 규제 특례가 적용되어 기존에 불가능했던 다양한 에너지 신사업 추진이 가능해진다.

또한 전력 수급 여유 지역으로 수요를 이전하기 위해 분산 편익이 반영된 저렴한 전기요금이 적용되며, 지역 발전사들의 전력 직접 거래가 허용되어 전력 판매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단순한 전력 인프라 확장을 넘어 지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11개 지자체에서 23개의 사업 계획이 제출되는 등 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가 이번 7개 지역 선정에 반영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각 후보지, 복합적 모델 적용 차별화된 전략 추진

분산특구 지정은 지방의 '에너지 르네상스'를 열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각 후보지는 지역 특성에 맞춰 수요 유치형, 공급 유치형, 신산업 활성화형 등 복합적인 모델을 적용하여 차별화된 전략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울산은 석유화학 산업단지에 지역 발전사를 통해 값싼 전기를 직접 공급하고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유치를 추진 중이다.

부산은 높은 전력 자립률을 기반으로 에코델타시티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 국내 최초로 ESS Farm을 조성하여 데이터센터 및 항만 선박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전남 해남은 솔라시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RE100 데이터센터 단지를 구상하며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구역 전기 사업 도입을 시도한다.

제주는 전기차를 ESS처럼 활용하는 V2G 사업 실증을 통해 에너지 신사업 테스트베드로 변모할 채비를 갖췄다.

경북 포항은 영일만 산업단지에 암모니아 기반 수소 엔진 발전 설비를 통한 무탄소 전력 공급을 실증하여 수출 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지원한다. 

충남 서산은 대산 석유화학 단지에 발전사가 전력을 직접 공급하여 석유화학 업계를 지원할 계획이다.

경기도 의왕은 ESS를 활용한 전기차 충전소 직접 전력 공급 사업 모델을 추진한다. 

정부는 분산특구에 전력 직거래 허용, 전기요금 할인, 전력 계통 영향 평가 면제, 국비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사업 리스크를 낮추고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특히 지역 발전사가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전력을 직접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기존 독점 체제에 균열을 내고 전력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의 비수도권 이전 가속화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분산특구는 단순히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넘어, 산업 유치, 일자리 창출,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는 지역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복합적인 경제 정책이자 에너지 전환의 실험장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증 단계에서 상용화까지 간극 여전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분산 발전 설비의 간헐성 문제와 이에 대한 안정적인 계통 연계 방안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전력 시장에서 지역 사업자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 그리고 신산업 분야의 경우 실증 단계에서 상용화까지의 간극이 여전하다는 점도 과제로 남았다. 

결국 분산특구의 성공은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의 실효성과 기존 제도와의 정합성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부의 제도 설계, 지방 정부의 전략 수립, 그리고 민간의 기술 투자라는 세 박자가 긴밀하게 맞물릴 때 비로소 진정한 에너지 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이 대한민국 에너지 지형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작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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