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정포럼 기자간담회./ 녹색전환연구소 제공
기후재정포럼 기자간담회./ 녹색전환연구소 제공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기후대응은 국가 생존전략입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기후재정에 쓰는 돈은 국제 기준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기후재정포럼이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2025 새 정부에 제안하는 기후재정 방향 보고서’를 공개하며 이같이 진단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명확하다. 탄소중립을 구호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이재명 정부 임기 동안 연 4조 원씩, 총 20조 원 이상의 기후재정 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후예산, “말은 많은데 돈은 없다”
현재 한국의 연간 기후위기 대응 예산은 약 12조원 수준. 2023년 국내총생산(GDP) 2401조 원의 0.5%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권고한 GDP 대비 5% 투자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특히 기후대응기금은 2020년 출범 이후 2조4000억원에서 정체 중이며, 전체 정부 지출 대비 비중은 0.3% 수준에 불과하다.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그린리모델링, 태양광 보급, 히트펌프 전환 등 대규모 사업을 실행하려면 지금의 재정 수준으로는 역부족”이라며 “배출권 유상할당과 에너지세 개편 등으로 재원을 확보해 기후대응기금을 2030년까지 20조 원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석연료 보조금, 재생에너지 10배...“이대로는 역행”
기후재정의 왜곡은 화석연료 보조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23~2025년간 연평균 화석연료 보조금은 12조9000억원.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예산은 1조3000억원에 불과해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임현지 부연구위원은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는 2021년 도입 이래 3년 넘게 연장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세수 손실은 연간 6~7조 원 수준”이라며 “이제는 이런 비효율적인 지원을 중단하고, **에너지 바우처 같은 방식으로 저소득층을 보호하는 재정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2-2025 기후대응기금 규모 및 정부 총지출 대비 비율./ 녹색전환연구소 제공
2022-2025 기후대응기금 규모 및 정부 총지출 대비 비율./ 녹색전환연구소 제공

“온실가스 감축 예산, 그린워싱 우려...기후경제부 신설해야”
현재 운영 중인 '온실가스감축 인지예산제' 역시 개선이 시급하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는 사업만 반영하고 있지만, 정작 배출량을 늘리는 사업은 예산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현 제도는 실질적인 감축을 이끄는 수단이 아니라, 형식적인 ‘그린워싱’ 평가에 그치고 있다”며 “감축뿐 아니라 배출까지 포함한 ‘온실가스 인지 예산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기후재정포럼은 대통령 직속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에 통합재정계획 수립 권한을 부여하고, ‘기후경제부’가 실질적 집행기관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탄소 줄이자면서 유류세 깎는다?...정책 앞뒤 안 맞아”
기후재정포럼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선 정책의 일관성과 실행력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이배 2020재단 상임이사는 “유류세 인하 정책은 탄소중립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세수 손실을 보전할 방법도 없이 화석연료 가격을 낮추는 정책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유럽은 그린딜 등으로 기업의 저탄소 기술 투자에 과감한 세액공제를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도 기후세제 개편과 함께 기후대응 기업에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예산이 기후정책의 출발점”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탄소중립을 외치기 전에 정부는 먼저 기후정책을 뒷받침할 예산 규모부터 정해야 한다.

최기원 연구원은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은 1페이지짜리 보고서 수준”이라며 “지금 누가 한국의 기후대응 예산 총액을 묻는다면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그 자체가 가장 큰 위기”라고 말했다.

기후재정포럼은 올해 안에 △배출권 유상할당 100% 확대 △탄소세 도입을 통한 교통·에너지세 전입 △기후세액공제 제도 마련 등을 통해 2030년까지 기후대응기금 20조 원 확보를 위한 실행 로드맵 수립을 정부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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