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 김충현 씨 사망사고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이 드러나고 있다. 사고 대책위원회가 공개한 김 씨의 휴대전화 카카오톡 기록은 충격적이다. 사고 초기 한전KPS가 전했던 입장과는 달리, 김 씨의 메신저에는 원청 직원으로부터 받은 작업 지시와 완료 보고 기록이 빼곡히 남아있었다.

특히 사고 당일인 6월 2일, 김 씨는 래핑 작업을 완료한 후 사진과 함께 "다 됐습니다"라고 보고했고, 한전KPS 기계1팀 직원은 "고맙다", "애썼네"라고 답했다. 이는 명백한 불법파견의 증거다. 2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1차 하청업체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상적인 산재 은폐 실태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전수조사 결과, 부상자는 많았지만 산재 처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온 설비에 데어 2도 화상을 입은 조합원도 회사 권유로 공상 처리했다. 200kg 무게의 터빈용 냉각수필터를 운반할 장비도 없어 리어카를 사용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이 일상이었다.

위험의 외주화와 다단계 하청구조
이번 사고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서부발전이 한전KPS에 정비업무를 도급주고, 한전KPS는 다시 한국파워O&M에 재하청을 준 다단계 구조다.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면서 안전의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에서는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환경에서 구명조끼와 밧줄 하나에 의지해 작업하고 있다. 파손된 부력제는 사람이 밟으면 물속으로 가라앉는 상황이다. 이런 위험한 작업들이 모두 하청업체에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는 "상시 지속적 업무를 인위적으로 분리해 도급을 주면 안전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며 "다단계 하청구조를 줄이고 고용구조를 일원화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위 출범과 투쟁 계획
시민사회단체 100여 개가 모여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대책위는 충분한 애도, 철저한 진상규명, 확실한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목표로 한다.
대책위는 서부발전과 한전KPS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할 예정이다. 또한 8월 발전 노동자 총파업을 지지하며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투쟁 거점을 용산으로 옮겨 대통령실을 압박하는 전략도 세웠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요구안을 전달했지만 아직 연락이 없다"며 "모든 일을 신속하게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답만은 늦게 한다"고 비판했다.

한전KPS 경영안정성 우려
한전KPS는 김홍연 사장이 2024년 6월 임기 만료됐지만 2025년에도 신임 사장 선임이 지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태안화력 사망사고까지 발생하면서 경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장 임명 절차가 마무리 단계라고 하지만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사장 선임이 지연될수록 조직 기강 해이와 정책 추진 동력 상실이 우려된다.
이재명 정부 에너지 정책과 전략 변화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원전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KPS는 기존 원전 정비 사업에서 태양광·풍력·수소연료전지·ESS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영역 확장이 필요하다.
실제로 양양·지산 풍력발전 경상정비, 신보령 태양광 건설공사 등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디지털 트윈 기반 에너지 관리 시스템과 태양광용 ESS 시스템 개발 등 첨단 기술 연구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 정비에 특화된 조직과 인력을 신재생 분야로 전환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사장 공백 상태가 이어질 경우 전략 추진력 약화가 우려된다.
성과와 미래 과제
한전KPS는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발전소 O&M 계약을 2027년 8월까지 2년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부터 15년 이상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온 결과다. 이는 한전KPS의 기술력과 신뢰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성과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연대하게 되는 이번 사고처리를 보며 국민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고있다. 해외에서는 인정받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내 하청업체 관리·감독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다.
태안화력 사망사고는 한전KPS뿐만 아니라 한국 발전산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불법파견과 위험의 외주화, 산재 은폐가 일상화된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충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