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지난 20일 오전 10시 37분, 충남 당진 대한전선 공장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40대 하청노동자 A씨가 무게 수백㎏에 달하는 사각형 철제구조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전기설비 제작 과정의 마무리 세척 작업을 하던 중 크레인으로 운반되던 구조물의 지탱줄이 끊어지면서 벌어진 참사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날이 A씨의 현장 작업 마지막 날이었다는 점이다. 2주간의 계약 기간을 채우고 떠나려던 순간, 안전장치의 실패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대한전선의 경영책임자 처벌?
대한전선은 호반그룹 인수 후 글로벌 인프라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당진공장은 고압 전력케이블과 초고압 직류송전(HVDC)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규모 생산기지다. 첨단 자동화 설비와 대규모 시설을 자랑하며 연 매출 1조원을 넘나드는 대기업이다.
하지만 현장 안전관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현장 근로자들에 따르면 원청인 대한전선 관리자는 현장에 상주했지만, 실제 작업지휘나 안전점검은 대부분 하청업체에 떠넘겨져 있었다. 원청은 전체 일정과 품질 기준만 정하고, 위험한 작업과 그에 따른 안전책임은 하청 노동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대한전선이 작업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도 안전조치를 소홀히 했다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경영책임자 처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전KPS, 5년간 산재자 3배 증가의 충격
지난 2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국파워O&M 소속 김충현씨가 발전설비 부품 절삭가공 작업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서부발전은 태안화력 경상정비 공사를 한전KPS, 금화PSC, 두산 에너빌리티 등 3개 업체에 발주했다. 이 중 2차 하청업체를 둔 곳은 한전KPS가 유일했다. 한전KPS는 전기 분야는 삼신에, 기계 분야는 한국파워O&M에 각각 재하청을 줬고, 김충현씨는 이 재하청 구조의 말단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충격적인 것은 한전KPS의 산업재해 증가 추세다. 2020년 9명이던 산업재해자 수가 2021년 12명, 2022년 12명, 2023년 19명을 거쳐 지난해에는 24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5년 만에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한전KPS는 최근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으며 뛰어난 경영 실적을 자랑했다. 안전경영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관예우로 얽힌 공기업 카르텔의 실상
한전KPS 하청구조의 문제는 단순히 안전관리 소홀에 그치지 않는다. 김충현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한전KPS 고위 간부들이 퇴임 후 민간업체를 설립하거나 재취업해 하청업체로 들어가는 '발전소 카르텔'을 지적했다.
실제로 한전 퇴직자가 설립한 삼신이 최근 경상공사 부문에서 따낸 24건의 입찰 중 19건이 한전KPS로부터 수주받은 것이었다. 약 80%에 달하는 압도적 수주율이다. 한국파워O&M 부사장도 한전KPS 재직 당시 인재개발원장과 기획처장 등 핵심 보직을 두루 거쳤고,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전기 업무를 위탁받은 또 다른 하청업체 회장 역시 한전KPS 간부 출신.
대책위는 "한전KPS 고위 간부들이 퇴임 이후 민간업체를 만들거나 재취업하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이들은 인력사무소처럼 하청업체를 운영하며 수수료를 챙기고 노동자들의 노무비를 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공기업 전관예우
이는 한전KPS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사원이 2022년 6월 발표한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 실태' 감사 보고서는 공기업 전관예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16년 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약 5년간 LH, 한국전력, 도로공사 등 3개 기관의 3급 이상 퇴직자 2342명 중 1118명(47.7%)이 해당 공기업과 계약 실적이 있는 업체에 재취업했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더 놀라운 것은 계약 규모다. 같은 기간 이들 공기업이 체결한 총 12만3585건(98조3798억원 규모) 계약 중 21.5%인 2만6616건(22조351억원)이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와의 계약이었다.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계약이 전관예우와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퇴직자를 고용한 업체와의 계약 중 31%는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다.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몰아준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346만 간접고용 노동자의 절망적 현실
이런 구조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하청·재하청 노동자들이다. 2019년 기준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명에 달하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중간업체 수수료 상한선이 없는 데다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으며 가장 위험한 작업을 떠맡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하청업체들이 인력사무소처럼 운영되면서 노동자 한 명당 연간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의 중간착취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추정했다.
중대재해법 3년, 달라진 게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흘렀지만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여전히 '비용 절감'의 그늘에 놓여 있다. 원청은 작업의 전체 일정과 품질 기준을 정하지만, 실제 위험한 작업은 하청과 재하청 노동자가 떠맡는 구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도 답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한전KPS와 국가철도공단, 한국철도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공공기관 10곳에 대해 기관 경고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는 사후 조치일 뿐 근본적인 구조 개선책은 아니다.
대전지방노동청 관계자는 "세 업체가 어떤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지 관련 자료를 통해 비교하며, 한전KPS 도급 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런 사후 대응만으로는 또 다른 김충현씨, 또 다른 A씨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근본적인 하청구조 개혁과 중간착취 방지, 그리고 원청의 실질적 안전책임 강화 없이는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