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이 단기 조정이 아닌 ‘구조적 쇠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며, 조선업계의 수주 전략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솔루션은 2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운항하지 못한 채 유휴 상태로 남아있는 LNG 운반선이 약 60척에 달한다”며 “이는 전체 선대의 10% 수준으로, 좌초자산 규모는 약 15조원(113억 58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독일의 쿠네 기후센터(Kühne Climate Center)와 영국 UCL 에너지연구소(UCL Energy Institute)가 공동 개발한 에너지 전환 기반 재무 영향 분석 방법론을 적용해 산출됐다.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촉발된 에너지 공급 불안과 운임 상승 기대에 편승한 투기성 대규모 발주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시장 실수요나 장기계약 기반이 아닌, 향후 운임 상승을 겨냥한 ‘묻지마 발주’가 결과적으로 공급 과잉을 초래한 것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신형 LNG선마저 운임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TFDE 선박의 1년 정기용선료는 하루 2만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60% 이상 하락했다.
에너지 고효율로 평가받는 2스트로크 엔진 탑재 선박도 하루 3만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어 채산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조기 폐선도 속출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최근 2000년대 초반 건조된 LNG선 4척을 선박당 약 1920만 달러에 매각해 폐선했으며, 현대LNG해운 역시 지난 17일 2000년 건조된 “Hyundai Cosmopia”를 고철 가격으로 처분했다.
2025년 들어 폐선된 LNG선은 벌써 8척에 달해 지난해 연간 수준과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LNG 수입터미널 가동률, 44%→38%
수요 부진은 LNG 수입터미널 가동률에서도 드러난다. 글로벌 평균 가동률은 2019년 44%에서 2023년 38%로 하락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입설비는 계속 늘어나지만, 정작 가동되는 비율은 떨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단순한 순환적 침체가 아닌, 재생에너지 확산과 맞물린 에너지 체계의 구조적 변화임을 지적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신은비 에너지공급망 담당 연구원은 “노후 LNG 운반선의 조기 퇴출이 일정 부분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미 발주된 신규 선박의 시장 진입은 피할 수 없다”며 “LNG는 신재생에너지와의 경쟁에서 점차 후순위로 밀리고 있고, 화석연료 수송선으로서의 수명도 끝나가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건조 중인 LNG선은 303척에 달하며, 2026~2027년에 각각 98척씩 인도될 예정이어서 공급 과잉 문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구형 증기터빈 방식의 선박 209척이 전량 퇴출된다고 가정해도, 이로는 공급 증가분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선업계의 전략 전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한국수출입은행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 중심의 수주 구조를 재점검하고, 대체 선종이나 친환경 선박 분야로의 전략적 전환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적 금융기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기후솔루션 오동재 공적금융 팀장은 “해상풍력설치선박 같은 신사업에서는 시장 선점 경쟁에 들어서면서 해외 기업들이 일찌감치 경쟁 중”이라며 “한국도 불황 속에서 모잠비크 LNG 선 발주 같은 경제성이 불확실한 사업에 금융지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조속히 조선업의 다음 기회 선점을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NG선 시장의 위기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저탄소 전환 흐름에 따른 ‘체계 변화’라는 점에서 조선·해운 업계 전반의 전략 수정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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