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포스코이앤씨 시공 공사 현장의 잇따른 인명사고를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제(Punitive Damages)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가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러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 실제 입은 손해액을 넘어 추가적인 배상을 명령하는 법적 장치이다. 단순한 손해 전보를 넘어 가해 행위를 처벌하고 유사한 불법행위의 재발을 억제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영미법에서 발전해 온 이 제도는 피해자가 입증한 손해 외에 징벌적 금액이 추가되어 가해자의 악의적 행위를 강력히 제재하는 역할을 한다. 주목할 점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민사책임의 범주에 속하며, 형사책임이나 행정 제재와는 별개로 중복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한국, '제한적' 징벌적 손해배상 이미 도입
한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아직 전면적으로 도입된 제도는 아니다. 대륙법계 국가로서 전통적으로 '손해 전보' 원칙, 즉 실제 발생한 손해만을 배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회적 요구와 특정 분야의 불법행위 억제 필요성이 커지면서, 일부 법률에서는 이미 징벌적 손해배상과 유사한 성격의 배상 제도가 제한적으로 도입되어 시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개인정보보호법: 개인정보 유출 등 침해 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을 명령할 수 있다.
-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해 3배 이내의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다.
-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담합 등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3배 이내의 손해배상을 적용할 수 있다.
- 제조물 책임법: 결함 있는 제조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제조업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될 경우 3배 이내의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다.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실제 손해액의 5배 이내에서 배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한국은 단순히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논의'하는 단계를 넘어, 특정 법률을 통해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 환경오염, 인권 침해 등 악의적 불법행위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다.
■ 불법행위 억제 및 사회적 정의 실현 기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의 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 이상의 손해배상을 명령함으로써, 피해 회복과 더불어 강력한 재발 방지 효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법적 제재 책임 제도이다. 이 제도의 확대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불법행위 억제 효과이다. 가해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큰 금전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불법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약자 보호 강화이다. 정보 비대칭이나 교섭력 열위로 인해 피해를 입기 쉬운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들이 대기업이나 권력형 불법행위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구제 수단을 제공한다.
셋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제고이다. 기업들이 단순히 법적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윤리와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는 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적용되고 있지만, 그 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적용 범위 확대에 대한 논의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도의 확대 과정에서는 과도한 배상으로 인한 기업 활동 위축, 예측 가능성 저해, 소송 남용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신중한 접근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단순한 금전적 배상을 넘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악의적 불법행위에 경종을 울리고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법적 도구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공사 현장의 잇따른 인명사고를 계기로 향후 한국 사회에서 이 제도가 어떻게 진화하고 정착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