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사)에너지안보환경협회(회장 이웅혁·건국대 교수)는 20일 제14차 에너지안보 콜로키엄을 개최, ‘KEDO 중유·경수로와 북한 에너지 현실: 향후 남북 에너지 협력 가능할까’를 주제로 남북 간 에너지 협력의 현실성과 전략 방향을 다각도로 논의했다.
이번 행사에는 북한 전문가·에너지 분야 연구자·예비역 장성·시민사회 인사 등이 폭넓게 참여했으며, 과거 KEDO 사업의 교훈을 중심으로 한반도 에너지 협력의 가능성과 조건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결여, 반복적인 군사적 긴장 조성 행위 등으로 인해 무조건적인 협력은 불가능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에너지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부 협력 모델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특히 과거 KEDO의 중유·경수로 제공은 북한의 전력난 완화와 비핵화 유인을 위해 추진됐으나 단순 지원형 모델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참석자들은 토론회를 통해 “이를 교훈 삼아 향후 남북 협력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조건부·단계형 이행 구조 △군사 전용 차단 장치 △국제 보증 메커니즘이 결합돼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이날 행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북한 체제 존중 및 공리공영과 유무상통 원칙에 기반한 교류협력 복원” 메시지 직후 열려 정책적 연계성 측면에서도 높은 주목을 받았다.

“단순 지원 아닌, 전략적 협력으로 전환돼야”
이웅혁 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남북 에너지 협력이 단순한 지원 개념을 넘어 전략적 레버리지 확보 수단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이미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고 비핵화 의지를 사실상 포기한 상황에서 실용성과 유연성을 갖춘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완화된 정경연계, 신축적 상호주의, 다자틀 속 양자채널 원칙을 통해 협력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에너지의 인도적·민생적 성격을 활용해 점진적으로 군사·정치 협상 테이블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북한 에너지 실태, 과거에 멈춰선 구조
발제를 맡은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임성재 박사는 북한의 에너지 구조가 “1990년대에 멈춰 있다”고 평가하며 석탄(43.2%), 수력(32.3%), 그리고 소규모 재생에너지와 석유가 혼합된 공급 구조의 한계를 지적했다.
특히 1인당 전력 소비량이 1971년 수준에도 못 미치고, 정유공장 일부는 가동이 중단된 상태라며 전력난의 심각성을 구체적인 위성사진과 수치로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전력 인프라 노후화, 송전망 취약성, 석유 도입량의 급감 등을 구조적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며 ‘이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KEDO의 유산과 새로운 조건부 모델
임 박사는 이어 과거 KEDO 사업 사례를 중심으로 협력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KEDO는 북한 비핵화를 조건으로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산물이었으며, 한국이 사업비의 70%를 부담하고 일본도 10억달러를 약속한 국제 공동 프로젝트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이 제기되며 미국의 정책 전환과 함께 중유 공급이 중단되고, 공정률 34%에서 전면 중단된 뒤 2006년 공식 종료됐다.
임 박사는 이 사례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손실뿐만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 제공이 국제정치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하며 미래 협력에 있어 군사 전용 차단, 단계별 검증, 국제 보증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제한적·조건부 협력, 주민 생활 밀착형이 해법
향후 협력 전략과 관련해 임 박사는 군사적 전용 위험이 적은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소 보수, 송배전 현대화 등 주민 생활 밀착형 협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군사적 위험을 차단하면서도 주민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북한 체제의 위협 인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2005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방북 당시 북한에 전력 제공을 제안한 선례를 언급하며, 이 같은 제한적 협력이 신뢰 회복의 마중물이자 장기 협력 기반 구축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개별 의견을 통해 남북간 에너지 협력 방안으로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과 지원”과 악화된 현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한 ‘신뢰회복 우선을 위한 관광 및 이산가족 방문 재개’ 등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전략적 지렛대화를 위한 4대 제안
이웅혁 회장은 이날 발언을 마무리하며 향후 남북 에너지 협력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전략적 방향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먼저, 비핵화 협상과 병행하되 지나친 경직성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 협력을 모든 비핵화 조건에 종속시키기보다 민생 중심의 제한적 협력을 통해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비핵화 협상으로 연결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제공 방식은 조건부·단계형으로 설계하되, 이행 결과에 따라 공급 여부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 설계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선점한 북한 내 에너지·자원 사업권을 고려해 소규모 분산형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와 같은 틈새 공략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제시했다. 기존의 대형 인프라 중심 접근보다 현실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다자 보증 속 양자 협력 채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군사 전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국제 감시와 단계별 검증 체계를 포함한 보증 메커니즘이 결합된 협력 모델을 통해 외교·안보 환경 변화에도 지속 가능한 협력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협회는 다음 달 11일 제15차 에너지안보 콜로키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15차에선 ‘한국의 에너지-자원안보 강화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 고찰: 북한의 자원개발 현황과 잠재성’을 주제로 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이 발제를 맡는다. 참가 신청 및 자세한 사항은 협회 공식 홈페이지(www.esea.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KEDO의 교훈에서 배우는 남북 에너지 협력”
- 北-러 파병 거래, ‘정제유 공급선’이 한반도 에너지 안보 흔든다
- [진단] “중동 위기, 에너지 공급망 뒤흔든다...한국형 대응 전략 재점검 시급”
- 정희용 의원 대표발의 ‘중국 서해 구조물 철거 촉구 결의안’ 국회 본회의 통과
- 중국의 ‘해양굴기’, 서해까지 확장...“한국 해양 에너지 주권, 지금 침묵하면 끝장”
- 에너지안보환경協, 한중·한일 해양관할권 전략 대응 ‘콜로키엄’ 개최
- [심층]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국가전략자산 vs 기후 역행”...국내외 찬반 양론
- “남북 자원 협력, 전략산업 생존 ‘열쇠’ 될 수 있다”
- [창간특집 인터뷰] “에너지안보·환경 통합할 ‘융합 싱크탱크’ 필요”
- [창간특집 탐방] 에너지안보환경協, 에너지안보·환경 분야 ‘아시아 씽크탱크’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