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0년 인도한 17만㎥급 FSRU./HD현대 제공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0년 인도한 17만㎥급 FSRU./HD현대 제공

 

[투데이에너지 김은국 기자]  전 세계 해양을 무대로 한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계가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 전략'이 해상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세력을 넓히는 한편,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워 자유롭고 개방된 해양질서의 재구축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광범위한 지역을 연결하는 육상과 해상 교통망을 구축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대외 경제정책이다.

특히 해상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항만, 철도, 도로 등 인프라 투자를 강화하며, 중국은 이를 통해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은 중국의 경제 성장뿐 아니라 지정학적 세력 확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India-Pacific Strategy)’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광역 해양 지역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외교·안보 정책이다. 미국은 동맹국 및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해양 안보, 경제 번영, 법치주의, 인권 존중 등 핵심 가치를 내세워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이 전략은 역내 평화와 안정, 그리고 국제 규범에 기반한 해양 질서 재정립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서, 한국 조선업은 다시 한번 전략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일대일로 해상 루트를 통해 파키스탄의 구아다르항,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 그리스의 피레우스항 등 전략 요충지를 확보하며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한국 조선사들은 이러한 항만과 연계된 인프라 구축 사업에서 일정 지분을 차지하며 선박 건조, 해양 운송, 물류 등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의 외교·군사 협력 틀이 강화되면서, 조선업계는 정치·안보적 균형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실제로 AUKUS(오커스), Quad(쿼드), 한미일 안보 협력 등이 강화되면서 해양 안보 이슈는 조선산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AUKUS는 2021년 9월 미국, 영국, 호주 3국이 체결한 새로운 안보 협력 체제다. 이 협정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균형과 해양 안보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특히,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고 첨단 방위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AUKUS는 중국의 해양 진출 견제와 역내 동맹국 간 군사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Quad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4자 안보 협의체로, 공식 명칭은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다. Quad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롭고 개방된 질서 유지를 목표로, 해양 안보, 사이버 안보, 공급망 안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합동 군사훈련과 인도적 지원, 첨단 기술 협력 등 실질적인 연대가 확대되고 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은 한국, 미국, 일본 3국이 주축이 되어 동북아시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평화 유지를 위해 추진하는 협력 체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 해양 안보, 정보 공유, 합동 군사훈련 등이 주요 협력 분야다. 최근 3국 정상회담을 통한 협력 강화와 공동 대응 체계 구축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역내 안보 환경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해양을 둘러싼 기술 및 전략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LNG운반선·FSRU(부유식 저장·재기화 설비)·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요가 급등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조선사들은 이러한 틈새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 중이다. 지정학 리스크는 있지만, 반대로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진 지금, 고사양 선박의 수요는 오히려 기회가 되고 있다.

LNG 운반선은 액화천연가스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선박이다. 극저온 상태에서 액화된 천연가스를 저장할 수 있는 탱크를 갖추고 있으며, 전 세계 LNG 생산지와 소비지 간의 에너지 수송을 담당한다. 최근 에너지 수요 증가와 함께 LNG 운반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 조선업계는 첨단 기술 고성능 LNG 운반선 건조에 주력하고 있다.

FSRU(Floating Storage Regasification Unit)는 해상에서 액화천연가스를 저장하고 다시 기체 상태로 변환해 육상으로 공급하는 설비다. 기존 육상 LNG 터미널에 비해 설치 기간이 짧고 유연성이 뛰어나, 신속한 에너지 공급망 구축에 적합하다. 한국 조선사들은 FSRU 시장에서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며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전 세계 해상 인프라와 항만 소유권 확대를 통해 공급망 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미국은 이에 맞서 동맹국 중심의 군사·외교 협력망을 공고히 하며 대응하는 모양새다. 이 양대 전략 사이에서 한국 조선업계는 중립적 균형을 유지하며, 양측 모두에게 기술·공급 역량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외줄타기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LNG 운반선 및 FSRU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조선 수주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지정학적 대립의 한가운데에서 이러한 산업 경쟁력을 지속하려면, 단순한 ‘가격 경쟁력’ 이상으로 에너지-외교-안보를 잇는 산업 전략의 정교화가 필수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정학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 산업은 국가 전략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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