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이 9월 16일(화)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한국의 전력망 확충 사업이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돌입했다. 이번 시행령은 지난 3월 25일 공포된 특별법의 9월 26일 시행에 앞서 법률에서 위임한 구체적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행령 제정 배경에는 전력망 주민수용성 저하로 인해 무탄소전원의 전력계통 연계와 첨단산업에 대한 전력공급 차질이 우려된다는 현실적 위기감이 작용했다. 전력망특별법은 전력망 주민수용성 저하로 인해 무탄소전원의 전력계통 연계, 첨단산업에 대한 전력공급 차질 등이 우려됨에 따라 그 제정 필요성이 각계에서 제기되어 왔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시행령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주민과 지자체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 확대다. 토지주가 3개월 내 조기합의할 경우 최대 75%까지 보상금을 가산하는 조항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보상금의 평균 33% 규모의 사용료만 지급하고 사용권만 확보하던 송전망 아래 부지(선하지)에 대해서도 매수를 통한 보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토지 소유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재산권 침해 우려를 해소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특별법 대상 기간선로 경과지역에 대해서는 기존 「송전설비주변법」에 따른 보상액을 전액 주민에게 지급하고, 추가로 50%를 편성해 마을 지원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송변전설비 밀집지역에는 추가 보상을 신설하여 근접·밀집 지역 세대가 기존 대비 최대 4.5배 지원금을 수령하도록 했다.
지자체 반대 완화를 위한 '당근' 정책
지자체에 대한 지원도 대폭 확대됐다. 가공선로 경과 지자체에 km당 20억원을 일시 지급하여 지자체 소재 기존 가공선로의 지중화 사업 등을 추진하도록 했다. 이는 그동안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해온 지자체들의 입장 변화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다.
변전소 등 설비 밀집 지역이 위치한 지자체의 산업단지에는 사업자(한전)가 전력공급설비를 우선 설치하도록 노력 의무를 부과했다. 이를 통해 지자체들이 송전망 건설로 인한 직접적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중앙정부 주도 갈등 해결 시스템 구축
시행령의 또 다른 핵심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갈등 해결 시스템 구축이다. 총리 주재 「전력망위원회」를 통해 중앙정부, 지자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여 전력망 갈등을 해소하도록 했다.
이 위원회에는 기재부·행안부·산업부·환경부(기후에너지환경부)·국토부·해수부·국방부·산림청 등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하여 범정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지자체 현안을 파악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소책을 마련하는 등 입지선정 등 초기 갈등 관리를 통해 사업이 장기 지연되는 사례를 방지할 계획이다.
의견수렴 강화와 신속성 확보의 균형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주재 「실무위원회」에 기초 지자체 참석을 보장하고, 실시계획 의견조회를 기존 전촉법 30일에서 60일로 연장했다.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지자체·주민에 대한 의견수렴을 강화한 것이다.
동시에 강화된 의견수렴을 기반으로 입지선정을 현행 2년에서 1년 6개월로 단축하고, 인허가 의제를 현행 18개에서 35개로 확대했다. 부대공사 인허가 신속처리 등을 통해 사업의 신속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기후위기 극복방안은 우선 이산화탄소를 대량을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전환이다. 인공지능(AI)은 데이터센터의 운영을 필수조건으로 하고, 데이터센터는 대량의 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시행령 제정을 더욱 급박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특별법을 통한 제도적 동력을 기반으로 지자체·주민 등 이해관계자와 협의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 고속도로 등 전력망을 적기에 구축함으로써 재생에너지 보급확대, AI 등 첨단산업 전력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345kV 설비 기준 13년→9년 단축 목표
정부는 345kV 설비 기준으로 현재 평균 13년이 소요되는 전력망 건설 기간을 표준 공기 9년 내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민원과 지자체 반대로 지연되어온 전력망 건설에 상당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경북 울진 신한울 원전 인근 변환소처럼 15년간 지연된 사업들이 이번 시행령을 통해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0년 계획 당시 2019년 가동 예정이었으나 현재 공정률 8%에 그치고 있는 이 사업이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탄소중립 동시 달성
시행령에는 주민·토지주가 참여하는 10MW 미만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대한 지원책도 포함됐다. 계통접속 비용을 최대 10억원까지 지급하고, 선하지 장기 저리 임대 등을 지원한다.
이는 송전망 건설로 인한 피해 지역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해 직접적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상생 방안이다. 동시에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행력 검증이 성패 좌우할 듯
시행령이 의결됨으로써 특별법의 제도적 틀은 완성됐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실행력이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15년간 지연된 울진 변환소나 12년 넘게 끌어온 하남 동서울변전소 갈등 등이 얼마나 빨리 해결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특히 파격적인 보상 확대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의 환경 및 안전 우려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정부의 세심한 갈등 조정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시행령을 통해 "에너지 고속도로 적기 추진의 제도적 동력이 대폭 확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이 AI 시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제도적 실험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