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소형모듈형 원자로(SMR)를 축으로 한 새로운 에너지 전략 수립에 나섰다. 인공지능(AI) 기반 산업의 급성장과 기후위기라는 이중 과제가 기존 에너지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전략 전환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문재인 정부는 2020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원자력 의존도를 줄이고 태양광·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전격 추진했다.
당시 정부는 원자력이 안전성과 폐기물 문제, 위험 요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판단 하에 원전 의존도를 줄이고 태양광·풍력 중심의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규 원전 건설은 백지화됐고 일부 원전은 조기 폐쇄됐으며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이 병행됐다. 실제 2017년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시작으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 구체적인 탈원전 조치가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에너지 전환이 장기적으로 전력 수급의 안정성과 환경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방향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특히 디지털 산업의 급성장과 AI·클라우드·반도체 산업 중심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은 국가 전력 구조에 구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 자연조건, 주민 수용성, 송전망 등 인프라 제약도 재생에너지 확산의 걸림돌이 됐다. 결국 탈원전 전략은 전력 수급 유연성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모두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에너지원 다변화보다 원전 축소에 집중하면서 산업 변화와 기술 진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탈원전은 이념 중심의 결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AI 시대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정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IEA, "향후 5년 내 세계 전력 수요 일본 전력소비량 초과" 전망
앞으로는 전력 수급 안정성과 산업 경쟁력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에너지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 기술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가로 향후 5년 내 전 세계 전력 수요가 일본 전체 전력 소비량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단일 국가 기준으로 현재 일본 전체 전력 소비량(약 940TWh)을 넘어서는 규모로, 단순한 산업 확대 차원을 넘어 에너지 체계 전체에 구조적 충격을 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생성형 AI의 모델 학습과 추론 과정은 고성능 GPU 클러스터를 통해 이뤄지며, 기존 클라우드 대비 전력 소모가 최대 10배에 달한다. AI 기반 서비스는 자율주행, 헬스케어, 금융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고전력 수요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주요 기술국가들은 1GW 이상 전력을 소비하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한국도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수가 400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급증하는 수요는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와 충돌하며 AI 연산을 위한 안정적 기저전력 확보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IEA는 각국 정부에 AI 전력 수요를 반영한 전력 계획 수립, 기저전원 확보, 에너지 효율 기반 인프라 정책, 스마트 전력망 확충 등을 강력히 권고했다.
李 정부, 사실상 '탈원전' 정책 폐기 수순
상황이 급반전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이재명 정부 들어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도 원자력이 탄소중립의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정책 유연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탈원전이 이념화된 정책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이로 인해 전력 수급 불안과 에너지 경쟁력 저하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은 2025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원자력 예산 증액과 SMR 계획을 수용하며 정책 기조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탈원전을 정치적 대결의 프레임에서 기술과 수요 기반의 현실적 정책 이슈로 재정립하려는 분위기 변화로 해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이 같은 입장 변화가 정책 후퇴가 아닌 ‘정책 진화’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과거의 탈원전은 위험과 비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면, 현재의 논의는 기후위기와 AI 시대의 전력 수급이라는 새로운 변수에 대응하는 정책 유연성의 발현”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특정 정당의 입장 전환을 넘어 에너지 정책이 기술과 수요 중심의 실용적 방향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흐름의 일환이라고 평가한다. 원자력, 재생에너지, 수소 등이 조화를 이루는 통합 에너지믹스 전략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내년도 원전 분야 예산 9천억 배정
결국 이재명 정부는 원자력을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으로 복원, 2026년도 예산안에 원자력 분야 예산 9000억원을 배정하며 ‘SMR 르네상스’를 선언했다. 정부는 SMR의 기술 고도화, 국산화, 실증사업 부지 확보, 해외 수출 전략 등을 중점 과제로 추진 중이다.
SMR은 안전성·확장성·입지 유연성에서 기존 원전보다 뛰어나 미국·영국 등 주요국도 차세대 원전으로 육성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AI 전력 수요 급증, 기후위기, 산업 경쟁력 유지를 동시에 해결할 현실적 대안으로 SMR을 선택했다.
정치권에서는 SMR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며, 전문가들은 정책 방향이 늦었지만 타당하다고 평가한다. 반면 시민사회 일부는 안전성과 폐기물 문제를 들어 원전 회귀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기술·경제·외교를 아우르는 통합 에너지 전략으로 SMR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탄소중립과 전력 수급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SMR의 안전성과 설치 유연성을 활용해 신재생에너지와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믹스 전략을 본격 추진 중이다.
정부는 이를 단순한 원전 부활이 아닌, AI 수요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 대전환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안전성·수용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일부 환경단체는 폐기물과 실증 부족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하고, 반면 산업계는 SMR의 설계 우위를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기술보다 중요한 건 정책의 정합성과 국민 신뢰”라며 SMR이 에너지 전략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신중한 설계와 실행력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신재생에너지가 미래 에너지의 중심이 될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간헐성과 수급 불안정성 문제로 인해 원전, 특히 소형모듈형 원자로(SMR)와 같은 저탄소 기저전원이 일정 수준 역할을 해야만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무작정 추진보다 신뢰 기반 정책 설계 병행돼야”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믹스 전략은 시대적 요구에 대한 정책적 응답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여전히 전통적 탈원전 철학과의 충돌, 기술 실증 부족, 국내 산업 생태계 재편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추진하기보다는 안전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한 신뢰 기반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에너지 전략은 단순히 원전 대 신재생의 이분법을 넘어 AI 기반 전력 수요 예측, 스마트 그리드 기반의 분산형 전력 체계, SMR과 태양광·풍력의 유기적 결합, 효율 중심의 수요관리 체계 등 통합형 에너지 전략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탈원전이라는 과거의 선택은 AI 기반 전력 수요 폭증이라는 새로운 현실 앞에서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정치적 이념만으로 에너지 문제를 풀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이와 함께 SMR 중심의 기저전원 확보, 신재생 확대, AI 기반 수요관리, 전력망 혁신의 유기적 결합이 실현될 경우 한국은 탄소중립과 전력 안정성이라는 두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에너지 미래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신규 원전, 필요하다”…대통령 신중론 속 산업부 장관 ‘필요성’ 강조
- 국민의힘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탈원전 시즌2”...이재명 정부 에너지 정책 정면 비판
- SMR 패권경쟁 본격화...“정부·국회, 속도감 있게 나서야”
- 탈원전? 원전 르네상스?...헷갈리는 에너지 정책
- [심층 분석] '탈원전 vs AI 전력 확보'… 새 정부 에너지 정책, 기로에 서다
- “에너지믹스, 그대로”...원전 예산 9000억 투입 속 李 대통령 ‘실용론’ 강조
- 정부, 원전 예산 9천억 ‘전폭 지원’...신규 건설은 재검토?
- 기후위기 심각성에 서울시의회 움직인다… 전담기구 설치·탄소시장 참여 촉구
- [기획]탄소중립·에너지안보 사이, 새 성장동력 찾다
- [기획] 원전 리모델링 시대 서막
- “기온 7℃ 오르면 생존 위협”...한국 기후위기 보고서, 경고음 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