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탈원전’과 ‘원전 르네상스’ 사이에서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
원전 확대를 향한 명확한 의지와 예산, 조직 개편 등이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실제 실행과 효과, 정책 메시지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언론 보도와 정부 발표들을 바탕으로,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과 그 안에 내포된 리스크, 산업적 기회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봤다.
정책 슬로건과 실행 간 괴리
출범 100일을 넘긴 현 시점,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전환·탄소중립”을 강조하면서도 원전 확대를 병행하겠다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탈원전 수정’ 기조가 공표된 이후 “에너지믹스는 그대로지만 원전 예산은 9000억 투입” 정책이 갖는 의미는 정책 슬로건과 예산 집행 사이의 괴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 이에 대한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현실이다.
조직 개편 측면에서도 에너지 분야 비중이 명확히 확대되는 흐름이다. ‘기후에너지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의 부처명 확정, 산업과 에너지 기능의 분리 등은 에너지 정책의 독립성과 전략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러나 “신규 원전 건설은 재검토” 대상이라는 환경부 장관의 발언이나 에너지믹스 비율에 큰 변화가 없다는 분석은 정부가 원전에 무게를 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탈원전 폐기 선언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원전 중심 전환의 내재적 리스크
‘원전 르네상스’ 전략은 기술적·사회적·외교적 측면에서 복합적인 리스크를 수반한다. 우선 i‑SMR(소형모듈원자로)의 경우, 기술 확보 및 시험 운전 일정은 발표됐지만 아직 상업적 검증은 충분치 않다. 안전 규제 체계와 운영 경험도 축적이 필요한 단계다.
지역사회와의 마찰도 잠재적 불씨다. 원전 인근 주민들과 지자체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 지진 대비, 안전성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여전히 갖고 있다. 신규 원전 추진 시 사회적 합의와 수용성 확보는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정책 일관성과 제도적 기반 부족 역시 문제다. 예산은 확대됐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 특별법’ 제정, 인력 양성, 전문 인프라 구축 등 제도적 뒷받침이 동반되지 않으면 원전 확대 정책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수 있다.
국제 환경도 변수다. 유럽연합(EU)의 원전 관련 판결 등 글로벌 규제 프레임의 변화는 한국의 원전 수출 전략에 불확실성을 더한다. 원자력의 탄소중립 기여 인정 여부에 따라 기술 경쟁국들과의 수주 경쟁 양상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회 포착 위한 산업적 대응 과제
반면, 원전 중심 정책 전환은 분명한 산업적 기회도 내포하고 있다. 한국형 원전(APR‑1400) 및 SMR 기술은 체코 등 유럽 국가들과의 수주 경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 기조는 관련 산업 생태계 복원의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 강화 측면에서도 원전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전력 수요 급증,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불안, 기후 변화 대응 압박 속에서 안정적이고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전은 중요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산업 기반 복원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위축됐던 관련 기업과 인력, 대학 전공 분야 등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인력 양성과 기술 개발(R&D) 투자 확대가 뒷받침된다면 장기적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존재한다. 먼저, 방사성 폐기물 관리체계, SMR 기술 기준, 안전성 평가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또 학계와 산업계 간 연계, 실무형 인재 양성, 전문기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특히 예산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책 목표, 추진 방향, 안전 대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확보돼야 한다. 아울러 원전 확대가 태양광, 풍력, 수소 등 신재생 분야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정력이 요구된다.
방향은 정해졌지만, 완성까지는...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분명 원전 중심으로의 전략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탈원전의 유보’가 아닌 ‘실용적 수정’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러나 정책 실행을 위한 기반은 아직 정비 중이다. 슬로건과 예산 사이의 간극, 사회적 수용성 부족, 법제 미비, 국제 환경 변화 등 다양한 변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정부가 말하는 ‘실용론’이 단지 구호나 발표에 머물지 않기 위해선 제도 기반 정비, 국민 신뢰 확보, 기술 안전성 검증, 산업 생태계 확충까지 아우르는 종합 실행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원전 르네상스’는 명실상부한 정책 방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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