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환경부 장관./ 환경부 제공
김성환 환경부 장관./ 환경부 제공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편성한 예산 가운데 1조원에 가까운 금액이 미집행, 불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환경부가 주관하는 '무공해차 보급 사업'과 '충전인프라 구축 사업'이 전체 감축예산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정부의 사업 추진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25일 발표한 '2024회계연도 온실가스감축인지 결산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292개 감축인지 사업의 예산 집행률은 89.4%(총 예산 10조8261억원 중 9조6798억원 집행)에 그쳤다. 이는 전년도 집행률 91.5%보다 2.1%p 하락한 수치다.

이 중 실제 온실가스를 줄이는 ‘감축예산’ 항목에선 총 예산 10조123억원 가운데 88.8%(8조8924억원)가 집행됐고, 1조200억원가량이 쓰이지 못한 채 불용됐다.

◇ 전기차 예산 1조 이상 불용...수요 부진과 제도 미비 복합 작용
환경부가 주관한 무공해차 보급 사업은 지난해 예산 2조3193억원 중 65.6%(1조5211억원)만 집행됐고, 충전인프라 구축사업은 4365억원 중 1374억원이 불용돼 집행률은 68.5%에 그쳤다.

이 사업은 전기차·수소차 구매 보조와 충전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대표적 탄소중립 추진사업으로, 예산 규모가 가장 크지만 최근 소비자 수요 위축과 충전 인프라 부족 등의 영향으로 대규모 예산이 이월 혹은 불용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전기차 시장의 ‘캐즘 현상(수요 단절기)’이 장기화된 가운데, 지난해 8월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가 수요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수소차 역시 모델 다양성 부족과 충전소 인프라 미비가 구매를 가로막은 요인으로 지적됐다.

◇ 정의로운전환센터 ‘예산 0원 집행’...“사업 의지 있나” 비판도
더 큰 문제는 아예 예산이 한 푼도 집행되지 않은 사업도 다수라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시행하는 ‘정의로운전환지원센터 구축·운영 사업’은 예산 24억원 전액이 불용처리됐다.

이 사업은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고용 불안정, 지역경제 위축 등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특구 지정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만 먼저 편성된 점이 발목을 잡았다.

산업부는 “특구 신청 지자체가 없었고, 기존 산업·고용위기지역 제도와의 차별성 부족으로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상현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신청 지자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3년째 집행을 포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사업 추진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시장·수요 여건을 반영한 감축사업 평가가 필요하다”며 “효과가 입증된 사업에 예산을 더 집중하거나, 실효성 없는 사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 옥천군 경부고속도로 옥천휴게소에 오픈한 SK시그넷 전기차 충전소./ SK시그넷 제공
충북 옥천군 경부고속도로 옥천휴게소에 오픈한 SK시그넷 전기차 충전소./ SK시그넷 제공

◇ 실효성 확보 위한 정책 리디자인 필요
이밖에도 고용노동부의 산업·일자리전환 지원금, 산업부의 해외 청정수소 도입 기반 구축, 보건복지부의 국립재활원 운영 사업, 우주항공청의 수소연료기반 카고드론 기술개발 사업 등도 예산 집행률이 저조하거나 전액 불용됐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직관적으로 효과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축사업을 줄일 경우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막대한 국가 재정이 방향성을 잃고 소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감축 실효성과 수요 기반에 기반한 예산 구조 재편이 요구된다.

한편, 김성환 신임 환경부 장관은 지난 22일 취임과 함께 환경부 공무원들의 전기차 이용률이 국민 평균에 그치고 있다며 선도적 역할을 당부했다.

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환경부와 기상청 공무원 중 전기차를 타는 비율이 국민 평균 정도에 불과하다"며 "환경부가 기후정책을 총괄하는 부서라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30년까지 전기차 450만대 보급이라는 정부 목표는 자동차 30%를 전기차로 바꾸자는 것으로, 현재 비율은 3% 정도"라며 "기후를 총괄하는 부서로서 환경부 공무원들이 누구보다 먼저 전기차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