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이 기자실을 찾아 취임인사를 하고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지난달 7일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이 기자실을 찾아 취임인사를 하고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투데이에너지 윤철순 기자] 정부가 13일 국정기획위원회 대국민 보고에서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전격 배제한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를 틈타 에너지 정책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정과제에서 빠진 에너지 조직개편 공백을 기회 삼아 산업부가 전력 시스템 전반의 구조개편을 자율적으로 선도하면서 사실상 ‘에너지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다.

14일 에너지업계 및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국정기획위원회의 발표 직전 ‘차세대 전력망 추진단’ 1차 회의를 개최,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분산 전력망 실증 계획과 함께 LMP(Locational Marginal Pricing) 도입, 전력감독원 신설, 전기위원회 독립 등 핵심 구조개편 방안을 속도감 있게 확정했다.

이는 향후 기후에너지부 논의가 재점화되더라도 에너지 정책의 ‘기존 권한’을 수성하거나 최소한의 양보로 조율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AI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전력망이야말로 전력 공급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해법”이라는 산업부 관계자의 설명은 산업부가 에너지 전환을 기후 대응보다 기술·산업 경쟁력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한 분산 아닌 집중...“정책 주도권 쐐기박기”
산업부는 이번에 발표한 분산전력망 개편을 통해 사실상 에너지 정책의 전주기적 구조를 단독으로 설계·집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전력망 혼잡을 이유로 호남 지역에 LMP를 우선 도입하고 2028년부터 지역별 요금제까지 추진하면서 지역 전력시장 독립 가능성까지 검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전력감독원 신설 및 전기위원회의 독립 규제기구화도 산업부 주도로 추진 중이다. 이는 에너지 시장의 감시·규제와 집행을 전적으로 산업부 산하 기관 중심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가 인사는 “기후에너지부 신설 여부를 두고 부처 간 조율이 지연되자 산업부가 빠르게 에너지 정책 지형을 자율적으로 설정한 것”이라며 “지금 구조를 선점해두면 향후 부처 통합이나 권한 조정이 추진되더라도 기존 권한을 유지하거나 최소화하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13일 오후 한강홍수통제소(서울 서초구)에서 수도권 집중호우 대비 관계기관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주재 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13일 오후 한강홍수통제소(서울 서초구)에서 수도권 집중호우 대비 관계기관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주재 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에너지 정책, 기후 아닌 산업 시선으로 전환” 우려
그러나 이 같은 산업부 중심 개편에 대해 환경단체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대응보다 산업 육성에 정책 초점이 치우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 설계를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상황에서 산업부의 선제 행보는 부처 간 정책 비전 충돌도 예고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국정과제를 두고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전환 등이 포함됐지만 국정의 축이 여전히 경제·산업 성장에 놓여 관련 과제들이 부차적 수준에 머물렀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2030년 감축 목표나 2050년 중장기 경로에 대한 정책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 산업부가 밝힌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78GW)는 윤석열 정부가 세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동일한 수준으로, 문재인 정부 당시 탄소중립 목표(30.2%)보다도 크게 후퇴한 수치다.

이런 점에서 산업부의 정책 개편은 기후정책의 통합 컨트롤타워로서의 '기후에너지부' 비전과는 상충하는 경로로 평가된다.

◇기득권 경쟁 본격화
이처럼 산업부의 빠른 행보는 에너지 정책 권한을 사실상 '기득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되는 한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 일관성과 통합 거버넌스에 새로운 구조적 한계를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환경단체들은 “임기 초반 기후대응 골든타임을 놓치면 2030년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모두 요원해진다”고 경고한다.

산업부가 에너지 정책 주도권을 위해 쐐기를 박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기후 리더십과 부처 조율의 정교한 균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해답은 정책 실행의 깊이와 속도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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